따라서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경건한 추념뿐만이 아니라 독립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이 굳건하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독립운동가의 발자취에 대한 진상규명이 아직도 미진하다면 이는 순국선열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또한 제주 항일독립 운동사를 바로 세웠다고 볼 수도 없다.
1909년 제주의병항쟁과 1918년 무오 법정사 항일항쟁은 제주지역 내 대표적 독립운동이다. 그 항쟁의 주동 세력 중 핵심인물들에는 스님과 불교인이라는 사실은 문헌과 친지들의 구전에 의해 확인되고 있으나 이 사실을 공적 기록으로 남겨 보전해야 할 의무를 지닌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항일운동사의 바로쓰기 내지 바로세우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제주의병항쟁의 주역으로 알려지고 있는 김석윤 지사가 1894년 전북 완주에 있는 위봉사로 출가한 스님이었다는 사실(본지 408호 보도), 그리고 무오년 법정사 항일항쟁의 주역으로 그동안 선도교도로 알려지고 있는 박주석이 금강산 사찰에서 불법을 배우고 의병항쟁에 뛰어들어 활동하면서 ‘박처사’로 불려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밖에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의 리더그룹인 방동화·강창규 스님 등에 대하여 북제주군 조천리 소재 항일독립기념관에는 ‘무직’ 또는 ‘농업인’ 등으로 새겨져 있어서 본지가 객관적 사료를 바탕으로 이를 고쳐야 한다고 보도한 이후에도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반승반속의 수행자가 많았던 일제 침탈시기의 제주 불교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스님으로서의 김석윤에 대한 연구가 전문가 그룹 또는 학계에서 미진했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법정사 항일항쟁의 주역에 대한 논의가 학계를 중심으로 활성화되어야 하고, 해당 자치단체는 행정적, 예산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과거사 바로세우기’ 사업과 같은 취지 또는 맥락에서 제주도정이 자진해서 이 일을 추진해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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