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경 (SN3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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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경 (SN35:228)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05.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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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바다’, ‘바다’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 이 바다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단지 많은 물의 적집이요 많은 물의 폭류일 뿐이다.”

4. “비구들이여, 인간에게 눈[眼]은 바다요 그것의 흐름은 형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형색으로 이루어진 흐름을 견디는 것을 두고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도깨비가 있는 눈의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 참된 바라문은 이것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하여 땅 위에 서 있다.”

5. “비구들이여, 인간에게 귀[耳]는… 코[鼻]는… 혀[舌]는… 몸[身]은… 마노[意]는 바다요 그것의 흐름은 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법으로 이루어진 흐름을 견디는 것을 두고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도깨비가 있는 눈의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 참된 바라문은 이것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하여 땅 위에 서 있다.”

6.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상어와 도깨비가 살고 겁나는 파도가 치는

건너기 어려운 저 바다를 건넌 자

그를 일러 지혜의 달인, 청정범행을 완성한자

세상의 끝에 도달한 자, 피안에 이른 자라 하리.”



《해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의 사방은 모두 바다입니다. 실로 측량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양의 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뜻에서 제주의 사해(四海)는 물의 바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생사가 거듭되는 중생들의 세상을 윤회의 바다로 비유해서 말합니다. 한편, 윤회의 거센 흐름[暴流]를 거슬러 올라 파도가 미치지 않는 해안을 열반에 비유합니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배우지 못한 범부들은 윤회의 바다에 살면서도 번뇌와 갈애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고, 의도적 형성과 사견 때문에 애쓰고 휩쓸리지만, 이 바다를 건너 피안에 이르기 위해서 올바른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설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욕계(欲界) 세상입니다. 인간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의 다섯 감관을 통해 바깥 물질세계를 인식하고, 또 마노[意]의 문을 통해 내 안의 물심(物心)현상을 인식합니다.

여섯 감관이 대상과 부딪치면 여섯 가지 느낌이 일어남과 동시에 마음에 드는 형상, 소리, 냄새, 맛 등에 대해서는 탐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성냄을,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어리석음을 드러냅니다.

『쿳다까 니까야』의 ‘여시어경’에 의하면 윤회의 바다 속에 파도는 분노와 절망을, 소용돌이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五慾)을, 상어와 도깨비는 여인을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불교심리학적 관점에서, 산다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복합적 흐름이고, 지구촌 60억 명의 사람들의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이 흘러가 모인 곳이 윤회의 큰 바다라고 비유해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회의 거센 흐름을 거슬러 올라 파도가 미치지 않는 해안, 즉 피안에 도달하려면 방편(뗏목)이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고귀한 말씀이 담긴 경(經), 율(律), 론(論) 삼장을 방편의 바다로 비유해서 말합니다.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천신들이 부처님께 와서 질문을 드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바다를 좋아하는 아수라 왕(王) ‘빠하라다’에게 설한 법문 가운데, “큰 바다가 하나의 맛인 짠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부처님의 법과 율에도 하나의 맛인 해탈의 맛을 가지고 있다.”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법과 율 속에 37가지 보리분법(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의 보배가 들어있다고 설하시면서 이 37가지 보리분법을 수행해야 번뇌가 멸하고 해탈을 실현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7가지 보리분법이라 함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를 뜻합니다.

세존께서는 예를 들면 암탉이 병아리들이 안전하게 뚫고 나오기를 바라면서 발톱 끝이나 부리로 계란의 껍질을 잘 부수듯이, 차례차례로 37보리분법을 수행해야 윤회의 10가지 족쇄를 부수고 반열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일체지를 지혜의 바다라고 합니다. 지혜의 눈을 지닌 성자들만이 이 윤회의 바다에서 피안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의 지혜를 갖추어야 무명이 깨지고 갈애가 말라버립니다. ‘나의 몸이 물질로 된 것이고,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무상한 것이며, 나의 마음[識]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알고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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