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誓願) 경 (S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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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誓願) 경 (S11:11)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06.2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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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가 전에 인간이었을 때 그는 일곱 가지 서원을 완전하게 받아서 지켰다. 이것을 지켰기 때문에 그는 지금의 삭까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4. 그렇다면 일곱 가지 서원이란 무엇인가?

① 나는 살아있는 한 부모를 봉양할 것이다.

② 나는 살아있는 한 가문의 연장자를 공경할 것이다.

③ 나는 살아있는 한 부드러운 말을 할 것이다.

④ 나는 살아있는 한 중상모략을 하지 않을 것이다.

⑤ 나는 살아있는 한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으로 재가에 살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청정한 손으로 주는 것을 좋아하고, 탁발하는 자가 접근하기 쉽게 보시하는 것을

즐거워 할 것이다.

⑥ 나는 살아있는 한 진실을 말할 것이다.

⑦ 나는 살아있는 한 분노하지 않을 것이고 만일 내게서 분노가 일어나면 즉시 그것을 없앨 것이다.



《해설》



■ 삭까(Sakka)는 삼십삼천(도리천)의 신들의 왕이며 중국에서는 제석천왕으로 부르고 있고, 인도에서는 인드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석문경」(DN21)에 의하면, 세존께서 마가다국의 라자가하의 동쪽에 있는 웨디야 산의 인다살라 동굴에 머무실 때 제석천왕은 법에 대한 간절한 원을 세우고 세존을 친견하려고 그 동굴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세 가지 느낌을 토대로 한 도 닦음에 대한 세존의 심심 미묘하신 설법을 들은 뒤 제석천왕은 법안이 생겨서 예류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제석천왕을 불교를 보호하는 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주석서에 의하면 삭까는 옛날 인간이었을 때 바라문학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33명의 친구들의 우두머리였는데 함께 보시와 지계의 공덕 행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본경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서원을 실천하여 죽은 뒤 33명의 친구들과 함께 삼십삼천에 태어났다고 해서 삼십삼천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원 가운데 으뜸은 법장 비구의 48대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이 법장 비구였을 때 세자재왕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게송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광대한 서원을 발원하였는데, 그 서원은 ‘무량수경’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 깨달음의 편에 있는 유익한 법들을 문사수(聞思修)하겠다는 거룩한 마음을 내는 것을 원(願)이라고 하고, 이 원을 반드시 이뤄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발원이라 하고, 그 원을 이루고자 맹세하면 서원이라 합니다. 또한 그 원을 이루기 위해서 방일하지 않고 정진하는 것을 원력이라 합니다.

■ 발원은 욕심에 찬 소원(所願)과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욕망에 물든 소원은 바라는 목적에 집착하기 때문에 욕망대로 되지 않거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할 때는 괴로움이 생깁니다.

■ 그러나 발원이나 서원은 나와 남이 함께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벗어나자는 것이며,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하고 깨달음을 얻자는 큰 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원이 아닌 발원과 서원이 되려면 먼저 업력과 번뇌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고통 받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출리심이 있어야 합니다. 조건 지어지고 형성된 이 세상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도된 견해로서 여기에 집착하는 한 윤회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 이렇게 전도된 견해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온(五蘊)의 공성(空性)을 바로 알고 보는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들은 누구나 보현보살의 행원을 세우고 수행, 정진하여 보리를 증득하고 중생교화로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희망과 기쁨을 주어 궁극적 행복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 발원은 마치 차에 시동을 거는 것과 같습니다. 발원이 있어야 신심이 끊어지지 않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 범부중생들은 과거 다생 겁을 두고 상속된 업력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업(業)은 “나의 주인이고, 나의 모태이고, 나의 상속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업(業)인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이고 그 업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갈애와 무명입니다.

■ 우리불자들은 제석천왕을 뛰어넘는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업력으로 살 것이 아니라 부처의 혈통을 받아야 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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