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방편 경 (SN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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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방편 경 (SN36:22)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07.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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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왕사성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2. “비구들이여, 느낌에 대한 백팔 방편 법문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3.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백팔 방편 법문인가? 나는 방편에 따라 느낌을 두 가지로 설했고, 느낌을 세 가지로 설했으며, 다섯 가지로, 여섯 가지로, 열여덟 가지로, 서른여섯 가지로, 때로는 백여덟 가지로 설하기도 했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두 가지 느낌인가? 육체적인 느낌과 정신적인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두 가지 느낌이라 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세 가지 느낌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세 가지 느낌이라 한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다섯 가지 느낌인가? 육체적 즐거움의 기능[樂根], 육체적 괴로움의 기능[苦根], 정신적 즐거움의 기능[喜根], 정신적 괴로움의 기능[憂根], 평온의 기능[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다섯 가지 느낌이라 한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섯 가지 느낌인가?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노[意]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여섯 가지 느낌이라 한다.”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열여덟 가지 느낌인가? 정신적 즐거움을 수반하는 여섯 가지[色·聲·香·味·觸·法] 추구, 정신적 괴로움을 수반하는 여섯 가지 추구, 평온을 수반하는 여섯 가지 추구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열여덟 가지 느낌이라 한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서른여섯 가지 느낌인가? 세속생활에 바탕을 둔 여섯 가지 정신적 즐거움, 출가생활에 바탕을 둔 여섯 가지 정신적 즐거움, 세속생활에 바탕을 둔 여섯 가지 정신적 괴로움, 출가생활에 바탕을 둔 여섯 가지 정신적 괴로움, 세속생활에 바탕을 둔 여섯 가지 평온, 출가생활에 바탕을 둔 여섯 가지 평온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라 한다.”

11.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백여덟 가지 느낌인가? 과거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 미래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 현재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백여덟 가지 느낌이라 한다.”



《해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느끼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眼耳鼻舌身意]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色聲香味觸法]인 육경(六境)에 부딪쳐 시각의식, 소리의식, 냄새의식, 미각의식, 감촉의식, 마노의식(意識)이라는 육식(六識)이 일어날 때 느낌도 함께 일어납니다. 예컨대, 맑은 하늘을 보면 상쾌한 느낌을 느끼듯이 눈의 감각기관이 대상[色]을 만나면 시각의식[眼識]이 생기고, 이에 뒤따라서 느낌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모두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느낌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부귀영화가 모두 느낌입니다. 즉 일체사가 모두 느낌입니다. 느낌이 갈애를 낳기 때문에 느낌을 얻기 위해 업을 짓습니다. 흡연과 알코올 중독, 도박, 사랑, 돈, 명예, 권력 등등은 모두 느낌이 일으킨 갈애 때문에 집착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번뇌입니다.

■느낌은 항상 ‘바로 여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내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수행자가 느낌이 일어날 때 느낌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순간에 연기가 회전하여 갈애를 일으키고 집착을 하여 업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이라 일컫습니다. 반면에 느낌은 조건발생적인 것으로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나의 느낌이 아니라는 알고 보는 것을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이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느낌에서 ‘무상■고■무아’의 법을 보시고 108번뇌를 멸진시켜 열반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자리는 네란자라 강가도 아니고, 보리수나무 아래도 아니라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런 이유로 바로 이 자리를 ‘황금의자’라 합니다.

■몸이 아파서 괴로워하는 것은 육체적인 느낌이고 이것이 증폭되어 마음까지 아픈 것은 정신적인 느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키려고 더 좋은 느낌을 추구하기 때문에 항상 느낌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탐착[貪]은 즐거운 느낌에서 비롯되며, 회피나 성냄[嗔]은 불쾌한 느낌에 연결되고, 어리석음[痴]은 즐겁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는 느낌에서 생깁니다.

■느낌에 끌려가면 세간의 삶을 사는 것이고, 끌려가지 않으면 출세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비록 수행자라 하더라도 1차적인 느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단지 원인과 결과로 나타난 하나의 현상으로 알아차려서 번뇌에서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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