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실 경 (SN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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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실 경 (SN36:7)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07.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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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홀로 앉음을 풀고 일어나서 간병실로 가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신 뒤 비구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비구는 알아차리고[正念] 바르게 이해하면서[正知]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3. “비구들이여, 비구가 알아차리고 바르게 이해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중에 ①즐거운 느낌, ②괴로운 느낌, ③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면 이것은 몸에 의해 조건 지워졌다. 그런데 이 몸은 참으로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듯 무상하고 형성되었고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몸에 조건 지워진 이 세 가지 느낌이 어찌 항상(恒常)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해, 그리고 ①즐거운 느낌, ②괴로운 느낌, ③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사그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소멸을 관찰하며 머무르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5. “[이렇게] 관찰하며 머무는 비구에겐 몸에 대해, 그리고 즐거운 느낌에 대한 갈망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그에겐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저항하려는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그에겐 몸에 대해,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지해지려는 잠재성향이 사라진다.”

6. “비구들이여, 비구는 느낌을 알아차리지만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안다. 그것이 연연할 것이 못되는 줄 안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기름을 반연하고 심지를 반연하여 기름 등불이 타는데 기름과 심지가 다하면 불꽃은 받쳐주는 것이 없어져 꺼지고 마는 것과 같다.”



《해설》



■느낌을 정확히 겨냥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지혜롭게 마음을 잡도리하는 것이라고 세존께서 설하셨습니다. 알아차림[正念]이란 대상에 마음을 겨냥하고 것이고, 분명한 앎[正知]이란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념과 정지는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가듯이 항상 함께 합니다. 모든 것은 느낌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인식됩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일체는 모두 느낌으로 귀결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느낌이 있다는 것은 자기가 살아있다는 징표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인 육경(六境)에 부딪히면 즉시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를 1차적 느낌이라 합니다. 이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2차적으로 갈애를 일으킵니다. 이 갈애로 인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서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느낌이 갈애를 낳기 때문에 느낌을 얻기 위해 행위를 합니다. 좋은 일을 할 때도 좋은 일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바로 느낌이고, 반면에 나쁜 일을 자꾸 하는 것도 나쁜 일을 했을 때 생기는 짜릿한 쾌감의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적 쾌락에 심취한 사람은 감각 대상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현란한 춤사위와 록음악에 매료되어 공연장에 군집하여 환호합니다. 신경을 안정시켜주고 긴장을 풀어주는 고전풍의 음악과 달리, 록음악은 젊은이들의 감각을 흥분시킵니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런 음악에 계속 빠져 청각적 느낌을 추구하다보면 사람들은 일시적 긴장이완을 경험할 수 있지만 고요함을 감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 불자들은 더 좋은 느낌, 더 감각적인 느낌을 추구하기 위하여 느낌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고요와 침묵의 가치가 있는 소욕지족의 삶이 바람직합니다.

■조건에 의해 일어난 느낌은 조건에 의해서 사라지기 때문에 느낌의 실재는 무상이며 괴로움이며 무아인 것입니다. 하지만 범부중생들은 ‘찰나 생(生)’, ‘찰나 멸(滅)’하는 그 느낌, 쾌감을 기억하여 애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느낌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이 남긴 생각, 관념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피안으로 건너가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느낌은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므로 나의 느낌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나의 느낌이 아닌 느낌에 집착해서는 결코 피안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느낌을 느끼지만 그것에 매이지 않는다면 바로 그 자리가 불성입니다.

■산업화시대의 향락주의 경향에 전도된 인간들은 괴롭고 싫은 느낌을 거부하고, 즐겁고 좋은 느낌을 더 많이 누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향락산업은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미국사람들 1,000만 명 이상이 쾌락추구를 포기하고 고요함과 깨어있음의 행복을 얻기 위해 느낌명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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