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한 하룻밤 경 (MN 131)
상태바
지복한 하룻밤 경 (MN 131)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08.23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나는 지복한 하룻밤에 대한 요약과 분석을 그대들에게 설하리라.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잡도리하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떠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바로 거기서 통찰한다.

정복당할 수 없고 흔들림이 없는

그것은 지혜 있는 자 증장시킬지라.

오늘 정진하라. 내일 죽을지 누가 알겠는가?

죽음의 무리와 더불어 타협할 수 없으니라.

이렇게 노력하여 밤낮으로 성성하게 머물면

지복한 하룻밤을 보내는 고요한 성자라 하리.“



《해설》

세존께서는 <쌍윳따 니까야> 등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자기 존재란 오온(五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경에서 ‘과거’라 함은 지나간 오온을 뜻합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는 세존의 가르침은 갈애와 사견(邪見)으로 되새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알음알이[識]가 지난 일을 기억하면서 열망과 욕망에 묶이기 때문에 그것을 즐기지 않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범부중생들은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미래에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즐기게 됩니다. 이때의 마음 작용은 매우 산만하고 불안하고 들뜨게 됩니다.

갈애(渴愛)는 성스러운 두 번째 진리인 고통의 원인입니다. 중생들은 세상 사물이 실재하며 지속되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들을 즐깁니다. 즐김과 갈망이 결합되어 여기서, 저기서 만족을 찾아 방황하는데, 그래서 그것들에 대한 갈애를 만들어 냅니다. 갈애로 인해 중생들은 어떤 것은 얻으려 하고 또 어떤 것은 피하려 합니다. ‘즐거움’이란 좋은 마음을 일으키는 느낌입니다. 세상에서는 허물이 있건 없건 즐거운 것은 모두 좋은 것으로 생각하여 범부중생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즐거움이 일어나도록 끊임없이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사견(邪見)은 중도를 벗어난 치우친 생각으로, 갈애와 결합하여 무수한 업보를 낳게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마음의 평정과 고요함을 얻게 하는 여러 가지 수행법을 고안했는데, 그 가운데 몸과 마음의 활동을 탐색하는 가장 좋은 방편으로 호흡관법을 강조하셨고, 이는 부처님께서 몸소 실천한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호흡명상은 ‘지금 여기(now here)’ 실재하는 들숨 날숨을 알아차리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어떤 혼란도 없이 호흡에 주의 집중하는 수행입니다.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법[物心現像] 가운데, 내안의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 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바람 등을 자르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차리는 매우 소중한 명상기법입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 아난다존자, 마하깟짜나 존자 등에게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마음상태는 오온 가운데 인식[想]이거나 의도[行]들에 속할 뿐이어서 무상한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삼매의 빛으로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열반과 위빠사나는 탐욕 등에 의해 정복당할 수도 없고 흔들리지도 않기 때문에 지혜로운 비구들은 이를 증장시켜 죽음의 신들조차도 범접할 수 없게 밤낮으로 성성(惺惺)하게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에는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과거·현재·미래」 또는 「전생·금생·내생」이라는 틀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으나, 실제로 마음작용으로서의 생각[想] 또는 의도[行]는 그 대상과 연관되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매 찰나의 흐름일 뿐 ‘과거·현재·미래’라는 실상은 얻을 수가 없는 것이기에 현재의 마음조차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시각각의 현재 일어나는 마음작용을 바로 일어나는 곳에서 지혜[반야]로서 통찰하여 그것이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관찰해야만 생사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볼 때는 봄만 있고, 들을 때는 들음만 있고, 생각할 때는 생각함만 있고, 알 때는 앎만 있을 뿐이고 보는 자도 없고 생각하는 자도 없다.”라는 세존의 교설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지복한 하룻밤을 청청하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