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까 범천 경 (SN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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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까 범천 경 (SN6:4)
  • /제주불교
  • 승인 2013.10.0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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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그 무렵 바까(Baka) 범천(brahma)에게 이러한 나쁜 견해가 일어났다. ‘이것(존재로서의 범천)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유일(獨存)하며, 이것은 불멸의 법이다. 이것은 참으로 태어나지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떨어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란 없다.’

2.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음으로 바까 범천이 마음에 일으킨 생각을 아시고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사왓티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서 사라져서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나셨다.

3. 바까 범천은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환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참으로 이것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유일하며, 이것은 불멸의 법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태어나지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떨어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란 없습니다.”

4.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바까 범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존자여, 참으로 그대 바까 범천은 무명에 빠졌구나. 그대는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라고 말하고, 견고하지 아니한 것을 ‘견고하다.’라고 말하고, 영원하지 않는 것을 ‘영원하다’라고 말하고, 유일하지 않은 것을 ‘유일하다.’라고 말하며, 소멸하는 법을 ‘불멸의 법이다.’라고 말하며, 참으로 태어나고 늙고 죽고 떨어지는 생겨나는 것을 두고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이것을 넘어선 다른 수승한 벗어남이 있는데도 ‘이것을 넘어선 다른 수승한 벗어남이라 없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니라.”



【해설】



■불교의 세계관은 신화적인 비합리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세계인 명상 수행의 차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정신세계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세계(欲界), 미세한 물질의 세계(色界), 비(非) 물질의 세계(無色界)로 구분합니다.

■욕계에 사는 육체를 지난 감각적 쾌락의 존재로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육욕천(六欲天)의 신(神)들이 있고, 색계에 사는 존재로는 초선정에서 사선정에 이르기까지 명상의 깊이를 조건으로 화생하는 신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초선천에 태어난 존재를 범천(梵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바까 범천은 인간으로 태어나 공덕을 쌓고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 사무량심 = 자·비·희·사]를 닦아 죽어서 제4선천인 광과천에 태어났다고 주석서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범천이 인간이었을 때 부처님은 ‘깝빠’라는 이름을 가진 범천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바까 범천의 전생 일화와 현생을 살펴보았습니다.

■바까 범천은 광과천에서 5백겁을 살다가 죽어서 제3천인 변정천에 태어나 64겁을 살았고, 다시 거기서 죽어서 제2선천인 광음천에 태어났는데 그 수명은 8겁이었고, 다시 초선천인 범천에 태어났지만 그 수명이 1겁뿐임을 아셨습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그 범천이 자신의 수명이 영원하고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바까 범천이 자신은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유일하면, 불생불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임을 지적하기 위하여 범천의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라문들을 위시한 인도인들의 염원은 예나 지금이나 범천의 세상(Brahma-loka)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인도 정신세계의 지도자로 꼽히는 오쇼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마하라지 등에 이르기까지 “나는 브라만(Brahman=梵我)이다. 나는 전부이며 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가르침을 펼치면서 ‘절대, 참나, 진아, 하나’ 등을 강조하고 있고, 이런 힌두이즘을 국내에 소개하고 설파하는 명상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힌두교의 명상가들이 우주현상의 본성이 무아(無我)이고 공(空)임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타마 붓다가 깨닫고 설하신 ‘무아·연기 법칙’과 상통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바까 범천이 사견(私見)처럼 ‘브라만 = 절대 = 창조주’라는 등식은 비록 3000여 년 이상 전승된 가르침이지만, 열반(닙바나)이라는 대해(大海)로 건너가는 여울로써 쓸모가 없다는 것이 세존의 교설입니다.

■바까 범천은 중생들의 전생을 알고, 1000세계에 광명을 비출 정도의 큰 신통력을 갖고 있어서 스스로 절대자이고 창조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세존께서는 범천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려고 내기를 걸었습니다. 바까 범천은 신통력으로 세존의 면전에서 사라졌지만 세존께서는 그 범천이 있는 곳을 다 찾아냈기 때문에 범천은 세존의 면전에서 사라질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세존께서 사라지자 그 범천은 세존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고, 모습을 숨긴 세존의 게송을 읊는 목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까 범천이 세존의 모습을 찾지 못한 이유는, 세존께서 열반(닙바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열반은 볼 수 없고, 무한하고 모든 곳에서 빛나나니.”라는 게송으로 바까 범천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게 하셨습니다.

■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有爲]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존재에서 해탈을 하지 않는 한, 결코 체득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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