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경 (SN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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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경 (SN 12:60)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12.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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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에서 깜마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2.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연기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 제게는 분명하고 또 분명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4. “아난다여, 그와 같이 말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난다.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술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5. “아난다여, 취착하기 마련인 법들에서 달콤함을 보면서 머무는 자에게 갈애는 증가한다.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해설》



• 연기는 부처님들의 영역에 속하는 심오한 가르침인데, 이들 두고 아난다 존자가 자신에게 이제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뽐내자 부처님께서 아난다 존자의 그런 성급함을 제지하면서 본경을 설하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세존께서 <대인연경(DN15>에서 아난다 존자에게 “조건(=연기)이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있다.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있느냐 하면, 느낌(=조건발생으로서의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는 것이다.”라고 설하셨습니다.

• 세존께서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경(MN28)>에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연기를 보는 자‘란 조건[緣, 제법의 상호의존]을 보는 자라는 뜻이고, ’법을 본다.‘는 것은 조건을 따라 생긴 법들을 본다는 뜻입니다.

• 한편, 세존께서 <연기 경(SN12:1)>에서 설하신 연기는 12연기에서의 조건발생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①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 ②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가, ③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④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⑤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⑥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⑦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⑧갈애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⑨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⑩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⑪태어남을 조건으로 ⑫늙음·죽음[老死]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憂悲苦惱]가 발생한다는 것은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말합니다.

• 눈에 비친 형색, 귀에 들리는 소리, 코끝에 닿는 냄새, 혀뿌리에 닿는 다섯 가지 맛,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五感] 중에서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일어나면, 이는 다섯 가닥의 얽매이는 감각적 욕망을 조건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겨난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괴로움의 무더기 경(MN13)>에서 이를 두고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달콤함에 욕심을 내고 집착하고 친밀하고 탐착하는 것이 갈애(tanhā)이고, 갈애가 일어나는 것이 곧 괴로움의 일어남입니다.

• 이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감각적 욕망을 기반으로, 단지 감각적 욕망이라는 원인 때문에 몸으로 나쁜 행위로 하고, 말로 나쁜 행위로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 느낌은 불쾌를 버리고 쾌(快)를 추구하는 갈애를 일으키고 갈애가 강력해지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과 사견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취착을 낳게 되고, 이 집착이 무르익어 몸으로 나쁜 행위로 하고, 말로 나쁜 행위로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게 됩니다.

• 이런 불선업의 과보로 인해 윤회의 고(苦)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삼악도, 파멸처에 태어나는 업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 부처님께서 찾아낸 업(業)의 법칙입니다.

• 갈애가 머물고 증장하는 거처가 육체[色]와 정신[受․想․行․識], 즉 오온(五蘊)입니다. 우리는 매 찰나 대상과의 연기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근(六根)과 대상이 접촉하는 곳에 취착하기 마련인 법들, 즉 오염원(번뇌)이 생동하고 있습니다.

•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는데, 윤회는 이 갈애에 의해 추동되고, 무명(無明)에 의해 자양되므로 이러한 업의 회전과 과보의 회전을 부수려면 무명이 명지(明知)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무명은 조건적 발생의 연기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연기를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아상이 사라진 자리에 관용이 생겨 보시바라밀을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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