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뚫음 경 (AN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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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뚫음 경 (AN 6:63)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01.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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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꿰뚫음의 방법에 대한 법문을 설할 것이다.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꿰뚫음의 방법에 대한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업(業)을 알아야 한다. 업들의 원인과 근원을 알아야 한다. 업들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업의 과보를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을 알아야 한다.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의도가 업이라고 나는 말하노니 의도한 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는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업들의 원인과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업들의 원인과 근원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업들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지옥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축생의 모태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아귀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인간 세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천상세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업들의 차이점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업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업의 과보는 세 가지라고 나는 말하나니 그것은 금생에 일어나거나 혹은 다음 생에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는 시기가 확정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업의 과보라 한다.”

6.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업의 소멸인가?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업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알아차림, 바른 삼매이다.”



《해설》



■ 불교에서는 무슨 행위든 다 업(Kamma)이라 않습니다. 행위 중에서도 의도(cetanā)가 개입된 행위를 업이라 말합니다. 부처님들과 아라한들을 제외한 모든 의도적 행위는 업이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들과 아라한들의 경우는 업의 근원인 무명과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되어 업을 쌓지 않기 때문입니다.

• 세존께서는 업을 몸[身]의 업과 말[口]의 업과 마음[意]의 업, 세 가지로 분류하셨는데,

이 세 가지 업 가운데 마음의 업이 악업을 짓고 악업을 행함에 있어 가장 비난받아야 할 업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의도한 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업이라고 하는 것은 조건입니다. 마치 씨앗[재생연결식]을 심으면 적절한 흙[업]과 수분[갈애]를 만나 발아해서 싹이 트고 그 종자에 고유한 열매가 열리듯이 의도적인 행위는 그 의도한 선(善) · 불선(不善)의 성질에 따라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갖고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서 열매란 업의 과보라는 의미이고, 줄이면 업보(業報)와 같은 말입니다. 의도 중에서 삿된 견해[邪見]로 의도한 것이 가장 크게 비난받아야 할 업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사견이라 함은 인과법칙, 즉 연기를 부정하는 견해를 말합니다.

• 선업과 불선업의 업보에 따라 태어날 곳, 즉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 세계가 정해집니다. 세존께서는 중생들의 윤회, 재생이라는 것은 인과적 생성원리에 따라 업에 의지하여 업으로부터 모태와 태어날 곳이 생기는 것일 뿐이고,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있어서 그 업보에 따라서 태어날 곳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다섯 가지 감관[五感]에 다섯 가지 대상[형상․소리․냄새․맛․감촉]이 부딪쳐 알음알이[識]가 일어납니다. 예컨대 눈과 형상과 빛과 마음에 잡도리함(作意) 등으로 분류되는 법들을 의지하여 조건이 되는 원인을 얻은 뒤 눈의 알음알이[시각의식]이 일어나는데, 이를 일러 감각접촉이라 합니다. 막대기[형상]로 북[눈]을 때려 북소리[시각의식]가 나는 것처럼 감각접촉을 반연하여 의도적 행위가 생겨납니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업은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금생에 받는, 다음 생에 받는 업, 받는 시기가 확정되지 않는 업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되지 않는 한 자기가 지은 업은 반드시 언젠가는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죽은 뒤 천도재를 지내서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출가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얻지 아니하는 한 업보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선정을 닦는 것은 웬만한 악업을 지었더라도 내생에 선처에 태어나게 하는 아주 무거운 업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자따삿뚜’는 부처님으로부터 사문과경을 듣고 예류과를 증득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아버지를 살해한 뒤 마가다국의 왕이 된 무간업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생사여로의 과정에서 선업은 진정한 동반자로서 친지와 같으므로,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의지처로 삼듯 선업에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중생들의 업이 좋고 나쁨은 그들의 근본 마음과 연관됩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등이 과도하다면 악업은 쌓이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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