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 (MN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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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 (MN61)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03.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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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 대나무 숲 다람쥐 보호구역에 에 머무셨다.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아라한의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암발랏티까로 라훌라 존자를 만나러 가셨다.

2. [세존] “라훌라야,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의 용도는 무엇인가?”

[라훌라]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3. [세존] “라훌라야, 그와 같이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몸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말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마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

4. [세존] “라훌라야,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자 하면,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고 둘 다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이제 몸으로 행하고자 하는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5. [세존] “라훌라야,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 있다면,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둘 다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몸으로 행하고 있는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6. [세존] “라훌라야,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 난 뒤에도,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지금 몸으로 행위를 했다.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친 것이거나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거나 둘 다를 해친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지금 몸으로 행했던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를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에게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혀야 한다.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힌 뒤 미래를 위해 단속해야 한다.”



《해설》

라훌라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외동아들로서 부처님이 출가하시던 날 태어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처음 까삘라왓투를 방문했을 때 일곱 살이었던 라훌라 존자가 부처님의 가사 자락을 잡고 유산의 상속을 요청하자 세존께서 법의 총사령관인 사리뿟따 존자에게 라훌라의 은사가 되어줄 것을 부탁하여, 라훌라 존자는 일곱 살에 그를 스승으로 모셔 출가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라훌라 존자를 직접 가르치신 여러 경들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본경은 그 가운데 최초의 경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거울의 예를 들어서 라훌라 사미에게 항상 거듭해서 비추어보고 반조해 본 뒤에 생각을 일으키고 말을 하고 행동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신 후 150여 년 뒤에 인도를 통일한 아소까 대왕에게도 큰 감명을 주어서 대왕의 칙령으로 이 경의 일부가 바위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불법의 혈통을 받은 불자(佛子)이므로 세존께서 라훌자 존자를 교계하신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반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남으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갈망으로 인해 자신이 알던 모르던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각 의도적 행위를 짓습니다. 이와 같은 의도적 행위로 인하여 유익한 과보를 얻거나 해로운 과보를 얻어서 육도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유익한 것이어서 즐거움으로 귀결되고 즐거운 과보를 가져온다면 기꺼이 행하도록 설하셨고, 그 반면에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온다면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해서 미리 행하지 말아야 하고, 이것을 놓쳐서 지금 행하는 중이라면 즉시 중지해야 하고, 이미 행위를 해버렸다면 자자(自恣)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행하기 전 ⇒ 행하는 중 ⇒ 행한 후의 세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지속적으로 자신을 반조하라고 교계하는 뜻은 ‘후회 없음’에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자기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참회하는 자는 새로운 각오가 있는 것이요, 자책하는 자는 향상의 노력이 있다”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경책을 깊히 새겨야 합니다.

마음을 홀로 내버려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마치 정원을 돌보지 않으면 잡초로 뒤덮이는 것처럼 마음을 챙기지 않으면 객진에 오염돼 탐심(貪心)과 진심(嗔心), 어리석음(癡心)으로 마음은 혼란해지고 흐리멍덩해집니다. 그래서 마음을 끊임없이 지켜봐야 합니다. 어떻게?

본경의 가르침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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