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경 (SN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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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경 (SN35:24)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05.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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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일체를 버림에 대한 법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一切)를 버림에 대한 법인가?

① 눈을 버려야 한다. 형색을 버려야 한다. 눈의 알음알이를 버려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을 버려야 한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세 가지 느낌]을 버려야 한다.

② 귀를 … 소리를 … 귀의 알음알이를 … 귀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③ 코를 … 냄새를 … 코의 알음알이를 … 코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④ 혀를 … 맛을 … 혀의 알음알이를 … 혀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⑤ 몸을 … 감촉을 … 몸의 알음알이를 … 몸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⑥ 마노[意]를 버려야 한다. 마노의 대상인 법[物心]을 버려야 한다. 마노의 알음알이[意 識]을 버려야 한다. 마노의 감각접촉을 버려야 한다.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 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을 버려야 한다.“

4.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일체를 버림에 대한 법이라 한다.”



《해설》



• 유정(有情) 중생들에게는 예외 없이 안[內]의 감각장소(六內處 = 감각기능)와 밖[外]의 감각장소(六外處 = 대상)가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를 일러 일체라고 정의하고 계십니다. 눈·코·귀·혀·몸·마노가 안의 감각장소(眼耳鼻舌身意 = 內 六處)이고,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이 밖의 감각장소(色聲香味觸法 = 外 六處)가 바로 그것입니다.

• 사람이 산다는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六入)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六境)과 접촉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12연기에서 육입과 육경이 부딪힐 때 이를 감각접촉이라고 말하는데, 그 접촉의 순간 대상을 아는 마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이 12가지 감각장소를 세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눈의 감각장소[眼處]는 눈의 알음알이[眼識]의 인식과정에 포함된 알음알이의 무리가 일어날 문이고 형색[色處]는 그 대상이 됩니다. 다른 감각장소인 귀, 코, 혀, 몸과 소리, 냄새, 맛, 감촉의 감각대상에게 이와 같이 적용됩니다. 잠재의식(바왕가)이라 불리는 마노의 감각장소(意處)의 한 부분이 마노의 알음알이(意識)가 일어나는 문입니다.

• 세존께서 갠지스 강변에 머무실 때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강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비유설법을 하셨습니다. "만약 저 통나무가 이쪽 강변(= 여섯 안의 감각장소)이나 저쪽 강변(=여섯 밖의 감각장소)으로 밀려가지 않고, 소용돌이에 말려 강 한가운데서 가라앉지도 않고(= 감각적 즐거움에 빠져들지 않기 위한 신행활동을 말함), 마른 땅 위로 내던져지거나(= 향상을 그르치는 자만을 말함), 사람이나 신령에게 붙들리지(= 천신으로 태어날 욕심으로 공덕행을 하거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함) 않으며, 또 속으로 썩어 부식(= 부도덕, 불륜, 정신적 오염, 종잡을 수 없는 행위, 위선, 속은 폭삭 썩어 있으면서 착한 척하는 것임)되지 않는다면, 저 통나무는 떠내려가 바다에 들 것이다. 왜냐하면 갠지스 강이 흘러가는 길은 결국 바다(=열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 열반은 버려서 실현된다는 가르침은 세존의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 우리 유정 중생들은

이 12가지 감각장소를 반연하여 일어난 세 가지 느낌을 먹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 정견을 갖춘 지혜로운 수행자는 이 모든 형성되고 조건 지어진 감각장소들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 힘(동력)으로 생길 수도 없고 자기 힘으로 머물 수도 없다고 봅니다. 다른 법들의 영향아래 존재하고, 다른 법들의 조건으로부터 생기고, 다른 법들의 대상으로부터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호기심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봅니다.

• 지혜로운 이는 이 12가지 감각장소로부터, 이것들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세 가지 느낌들에 애착하지 않고 끌려 다니지 않고 버리기 때문에 갠지스 강물 위에 떠있는 통나무가 바다로 들어가듯 열반에 도달합니다.

• 볼 때는 봄만이 있는 마음만 있고, 들을 때는 듣는 마음만 있습니다.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형색의 감각장소[色處]를 볼 때 영원하다든가, 아름답다는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번뇌와 함께 보는 것이 됩니다.

• 알아차리면서(sati) 형색을 보되 형색에 물들지 않는 자, 소리를 듣되 소리에 물들지 않는자는 표상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무상삼매(無相三昧)에 들어 열반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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