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칼로 만든 옷감 경 (AN 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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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로 만든 옷감 경 (AN 3:135)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06.0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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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머리칼로 만든 옷이 짜서 만든 옷감 가운데서 가장 저열한 것이라고 불린다. 머리칼로 만든 옷감은 추울 때 추우며 더울 때 덥고 색깔이 나쁘고 냄새가 나쁘고 촉감이 불쾌하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보통 사문들의 가르침 가운데서 막칼리의 교설이 저열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업이란 것도 없고, 도덕적 행위를 지음도 없고, 정진이란 것도 없다.’는 이러한 교설과 이러한 견해를 가진 막칼리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2. "비구들이여, 과거세의 아라한 · 정등각들인 그분 세존들께서는 업을 설하셨고, 도덕적 행위 지음을 설하셨고 정진을 설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분 세존들께서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업이란 것도 없고, 도덕적 행위를 지음도 없고, 정진이란 것도 없다.’는 이러한 교설과 이러한 견해를 가진 막칼리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고.

3. "비구들이여, 미래세의 아라한 · 정등각들인 그분 세존들께서는 업을 설하고, 도덕적 행위 지음을 설하고 정진을 설하실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분 세존들께서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업이란 것도 없고, 도덕적 행위를 지음도 없고, 정진이란 것도 없다.’는 이러한 교설과 이러한 견해를 가진 막칼리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고.

4. “비구들이여, 지금의 아라한 · 정등각인 나도 업을 설하고 도덕적 행위 지음을 설하고 정진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업이란 것도 없고, 도덕적 행위를 지음도 없고, 정진이란 것도 없다.’는 이러한 교설과 이러한 견해를 가진 막칼리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고.

5.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강어귀에서 그물을 치면 많은 물고기들을 불편과 괴로움과 재난과 파멸로 몰아넣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쓸모없는 인간 막칼리는 사람을 낚는 그물로 세상에 태어나 많은 중생들을 손해와 괴로움과 재난과 파멸로 인도한다.”



《해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왕사성)에서 부처님의 주치의로 널리 알려진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지와까는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의 주치의로 이름을 떨치셨던 명의(名醫)입니다.

지와까의 소개로 아자따삿뚜 대왕이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자 세존께 출가생활의 결실을 질문하면서 막칼리 수행자를 만나서 출가생활의 결실에 대하여 환담한 내용을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왕이 막칼리로부터 들은 바는 “모든 중생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천성의 틀에 짜여서 여섯 종류의 생[六趣]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것이었습니다.

사명외도(邪命外道)인 막칼리의 사상은 모든 것은 이미 운명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선행이나 악행을 저질러도 이를 원인 또는 조건으로 하여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운명결정론입니다. 따라서 그는 업과 과보 모두를 부정하므로 무인론자이고, 도덕부정론자이고, 허무론자라 할 수 있습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업(kamma) 지음도 정진도 업의 결과도 모두 부정하는 막칼리의 사상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천박하다고 꾸짖으면서 막칼리는 세상에 태어나 사람을 낚는 그물로 많은 중생들을 손해와 괴로움과 재난과 파멸로 인도하는 자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업(業)이란 ‘의도적 행위’로 풀이하고 있고, 『청정도론』에서는 공덕이 되는 행위, 공덕이 되지 않은 행위, 흔들림 없는 행위(출가사문의 수행)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몸[身]과 말[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인 신업, 구업, 의업의 삼업이 바로 의도적 행위입니다. 삼계에 사는 중생들은 이와 같은 의도적 행위로 인하여 유익한 과보를 얻거나 해로운 과보를 얻어서 육도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비담마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사는 세상인 이 육도는 모두 심리상태의 반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지옥은 지옥과 어울리는 극도의 나쁜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나서 머무는 것이고, 천상은 선(禪)이라는 고도의 행복과 고요함과 집중이 있는 곳으로 삼매의 경지를 터득한 자들이 태어나서 머무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존께서는 어떤 중생이 삼악도 또는 인간과 천상의 선처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전생에 그런 세상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業, kamma), 즉 마음의 의도적인 행위를 형성하고 만들어내고 지탱하였기 때문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것을 의도하고 어떤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 잠재적 성향을 가지면 그것은 업을 짓는 알음알이가 머무는 조건이 됩니다. 그 업력에 의해 조건 지어진 알음알이의 씨앗(재생연결식)은 그에 적절한 세상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고 업의 힘에 따라 또 다시 생명의 몸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해탈은 이 업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해탈의 힘은 매순간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도록 정진에 정진을 계속하는 데서 샘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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