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거리 경(AN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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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 경(AN4:47)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06.0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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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원거리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하늘과 땅이 첫 번째 서로 먼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다의 이쪽 기슭과 저쪽 기슭이 두 번째 서로 먼 것이다. 비구들이여,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는 곳과 지는 곳이 세 번째 먼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른 법과 바르지 않는 법이 네 번째 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원거리이다.”

2. 세존께서 이와 같이 법문을 하고 나서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다.

“하늘과 땅은 서로 멀고

바다의 저쪽 언덕도 이쪽과 멀고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는 곳도 지는 곳과 멀다고들 하네.

그러나 바른 법과 바르지 않는 법의 사이는

이보다 더 멀다고들 하네.

현명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일시적이지 않아서

머무는 동안 내내 그 본성을 버리지 않지만

우매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즉시에 이지러져버리네.

그러므로 바른 법은 바르지 않는 법과 아주 멀다네.“



《해설》



• 바른 법[正法]이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사띠파타나) 등으로 구성된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보리분법, 조도품법]을 말합니다. 37가지 법은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로 구성됩니다.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는 바와나(수행)는 팔정도를 근간으로 하는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로 정리되는데, 37가지 보리분법을 압축하면 팔정도입니다.

• 바르지 않는 법[非法 ; 邪道]이란 62가지 견해로 구성된 바르지 못한 법을 말합니다. 62가지 견해는 『디가 니까야』의「법망경」(DN1)에서 세존께서 하나도 빠짐없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게 설하셨습니다.

•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재세 시에도 인도에는 62가지(과거 18 + 미래 44) 견해가 있었습니다. 이런 견해의 문제에 대하여 고뇌를 누구보다 많이 하신 분이 바로 세존이십니다. 그 62가지 견해 중, 이 형성된 세상과 자아(영혼)가 영속한다고 보거나[常見], 또는 단멸한다고 보는 견해[斷見]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전자에 집착하면 영원주의에 빠지고, 후자에 집착하면 허무주의에 빠진다는 것이 세존의 교설입니다.

• 이 62가지 견해의 근본 뿌리는 유신견[有身見]입니다. 유신견이라 함은 “오온의 각자에 대하여 ①오온이 자아이다, ②오온을 가진 것이 자아이다, ③오온이 자아 안에 있다, ④오온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는 20가지 견해(5x4=20)”를 말합니다.

•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아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들을 두고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취착한 것에 불과합니다. 중생이란 이러한 오온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서로 부딪혀서 만들어내는 물안개와 물보라와 같은 개념적 존재일 뿐입니다.

• 유신견과 무아[空]은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있어서 전자의 족쇄에 묶이면 윤회에 머물고 후자를 깨달으면 해탈, 열반으로 나아갑니다. 삼조(三祖) 승찬 대선사께서 지은 신심명(信心銘)에는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이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처럼 멀어진다는 가르침인데, 본경의 대의를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 현대사회를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분명히 말법 시대이고, 투쟁견고기(鬪諍堅固期)라고 말할 수 있다는 선지식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비록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고, 부처님의 법문을 직접 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부처님의 정법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빠알리어 경전이 있고 그 한글 경전이 있는 시대이고,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팔정도 수행이 있는 시대이고, <셋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반을 성취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정법 시대에 살고 있는 행운아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태어나더라도 정법 시대에 태어나기가 어렵고 또 정법이 살아있는 나라에 살기도 어렵고, 나아가 정법 수행을 하는 바른 스승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 보시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을 닦는 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며 아무나 만날 수 없는 희유하는 것으로 깊이 새겨야 합니다. 말법 시대가 오면 열반에 이르는 문이 닫힙니다. 그리고 다음 부처님의 출현에 의해서만 다시 열반의 문이 열립니다. 열반의 길은 원하는 자만이 가는 길이기에 머뭇거릴 여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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