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부 경(SN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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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부 경(SN41:6)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06.2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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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까마부 존자는 맛치까산다에서 망고 원림에 머물렀다.

2. 그때 찌따(Citta) 장자가 까마부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까마부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찌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존자시여, 얼마나 많은 작용들[行]이 있습니까?”

4. “장자여, 세 가지 작용들이 있으니 몸의 작용[身行], 말의 작용[口行], 마음의 작용[心行]입니다.

5. “감사합니다. 존자시여.”라고 찌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존자시여, 그러면 얼마나 많은 몸의 작용이 있고,

얼마나 많은 말의 작용이 있고, 얼마나 많은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까?“

6. “장자여,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이고,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 말의 작용이고, 느낌과 인식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7. “감사합니다. 존자시여.”라고 찌따 장자는 까마부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까마부 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8. “존자시여, 그러면 왜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입니까? 왜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 말의 작용입니까? 왜 느낌과 인식은 마음의 작용입니까?”

9. “장자여, 들숨날숨은 몸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입니다. 장자여, 먼저 생각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뒤에 말을 터뜨립니다. 그래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말의 작용입니다. 느낌과 인식은 마음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마음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느낌과 인식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해설》



• 본경에 등장하는 망고 원림은 고대인도 마가다국(國)의 바라나시의 상인으로 재가 수행을 하여 불환과를 증득한 찌따(citta) 장자가 마하나마 존자를 위해 지은 정사(精舍)입니다.

•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남으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갈망으로 인해 자신이 알던 모르던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각 의도적 행위를 짓습니다. 이를 일컬어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3업이라 하는데, 생전에 불선업을 많이 지은 중생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지옥, 축생, 아귀의 삼악도에 태어나게 되고, 반면에 선업을 많이 지은 중생은 선처(善處)인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고 것이 세존의 가르침입니다.

• 출가사문들도 업(業)을 짓습니다. 다만 범부중생과 달리 그 업은 수행(修行) 업입니다. 본경에서 찌따 장자의 질문주제는 수행자로서 몸의 작용, 말의 작용, 마음의 작용을 어떻게 가져야 하고, 또 그 작용을 어떻게 소멸시켜 해탈, 열반으로 기울고 향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 들숨과 날숨은 몸에 속하며 이 법들은 몸에 계박되어 있는데다가,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최상의 명상주제로 선택하여 제자들에게 아나빠나 사띠(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 호흡관법) 수행을 하도록 강조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웨살리 경」, [아난다 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안의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것은 예컨대 내안에 일어난 과거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나, 현재의 느낌과 갈애 등을 자르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매우 소중한 명상기법입니다.

•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기 위해 명상주제로 들숨날숨을 선택한 후, 마치 허공을 날기를 원하는 새가 날개를 치는 것처럼 들숨날숨에 마음을 향하게 합니다[尋]. 마치 허공을 나는 새가 더 높이 먼 곳을 날기 위해 날개를 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들숨날숨에 마음을 유지시킬 때[伺], 수행자는 근접삼매 또는 본삼매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 누구나 먼저 생각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나서 말을 한다는 의미에서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은 말의 작용입니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 접촉해서 일어나는 느낌[受]과 인식[想]은 마음부수[心所]로서 이 법들은 마음에 계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마음의 작용입니다.

•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은 선정의 다섯 가지 요소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요소입니다. 2선정에 들면 말의 작용이 소멸되고, 4선정에 들면 몸의 작용이 소멸되고, 멸진정에 들면 마음의 작용이 소멸한다는 것이 세존의 가르침입니다.

• 부처님을 비롯한 출가사문들이 깨달은 이후에도 일상에서 몸소 실천하신 수행법은 ‘아나빠나 사띠’입니다. 내 안의 호흡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것은 사마타 수행이고, 호흡하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거나 호흡의 무상함을 통찰하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내 몸과 마음 안에 해탈의 세 가지 관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道)가 있습니다. 그런데 범부는 자기 그릇만큼 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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