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경(MN11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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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경(MN116) <8>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1.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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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관찰 ; 法隨觀】



1. “비구들이여, 비구는 ⑬‘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며,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⑭‘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⑮‘탐욕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탐욕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2. “비구들이여, 이렇게 수행할 때 그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法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바르게 이해하고 알아차리면서 머문다. 그는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을 통찰지로써 보고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바르게 이해하고 알아차리면서 머무는 것이다. “

4.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거듭 행하면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을 성취한다.”



《해설》



• 이번 호에서는 신(身)-수(受)-심(心)-법(法) 네 개씩 조 가운데, 네 번째 네 개조를 수행하는 방법[法隨觀]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아나빠나사띠 16단계 중 ⑬단계부터 ⑯단계까지의 수행법에서는 법(法)이 명상주제가 됩니다.

• 네 번째 네 개조의 법수관(法隨觀)에서 관찰의 대상이 되는 그 법(法)이란 오온(五蘊)을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앞의 첫 번째 네 개조에서 몸(호흡)의 관찰로써 순수한 물질 또는 물질의 무더기[色蘊]을 파악하는 것을 설하셨고, 앞의 두 번째 네 개조에서 느낌의 관찰로써 느낌의 무더기[受蘊]을 파악하시는 것을 설하셨고, 앞의 세 번째 네 개조에서 마음의 관찰로써 알음알이의 무더기[識薀]을 파악하시는 것을 설하셨기 때문에 네 번째 네 개조에서는 명상주제가 되는 법은 오온(五蘊) 중, 색온(色蘊), 수온(受蘊), 식온(識薀)을 제외한 상온(想蘊)과 행온(行蘊)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대념처경(DN22)』의 법수관(法隨觀)에서 관찰의 대상이 되는 그 법(法)이라 함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열두 가지 내․외부의 감각장소[12處],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팔정도(八正道)를 포괄하는 넓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 법수관(法隨觀)의 수행 단계를 요약하면, ⑬단계에서는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수행자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온갖 인식의 무더기[想蘊], 갈망과 의도 등을 포함한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蘊] 등을 관찰하고[無常觀], ⑭단계에서는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수행자의 마음속에 탐욕이 사라져 감을 관찰하고[離貪觀], ⑮단계에서는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수행자의 마음속에 탐욕이 소멸됨을 관찰하고[滅貪觀], ⑯단계에서는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수행자는 집착 또는 갈애를 놓아버리며 마음이 열반을 향해 기울고 있음을 관찰합니다[出離觀].

• ⑬단계 ‘무상을 관찰하면서’라는 구절에서 무상한 것이라 함은 다섯 가지 무더기, 즉 오온을 말합니다. 왜 그러냐하면 이것들은 일어나고 멸하고 변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그 어떤 것이든[色蘊] 온도, 바람, 햇빛 등에 의해 변형(變形)됩니다. 변형은 형태나 모양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즉 변형되는 성질을 가진 것이 물질인데 이것은 물질만의 특징입니다. 한편 정신은 대상을 향해 기울기 때문에 ‘기운다’는 뜻에서 정신이라 합니다. 기우는 특징을 가진 것이라 함은 대상과 대면하여 기우는 고유성질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정신에는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行], 알음알이[識]의 무더기가 있는데, 그것들은 변화가 있으나 변형은 없습니다.

• 수행자는 ⑬단계에서 무상을 관찰할 때, 정신과 물질은 상호 의존하여 인연생기(因緣生起)함을 관찰하여야 합니다. 정신과 물질은 서로 다르고, 서로 섞이지 않으며 정신에 물질이 없고, 물질에 정신이 없으나 막대기로 북을 두드리면 그 북에 의지하여 소리가 있듯이 물질에 의지하여 정신이 일어나고, 정신을 의지하여 물질이 일어남을 관찰하여야 합니다. 이에 더하여 이런 인연 생기에 반대되는 인연 소멸, 즉 조건 지어짐의 사라짐을 역관(逆觀)하여야 합니다.

• 수행자는 “배를 의지하여 사람들이 바다를 여행하듯이 물질을 의지하여 정신의 몸이 일어난다. 사람을 의지하여 배가 바다를 가듯이 정신을 의지하여 물질의 몸이 일어난다. 사람과 배가 서로 의지하여 바다를 가듯이 정신과 물질은 둘이 서로서로 의지한다.”라는 식으로 무상을 관찰합니다. “나의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분리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알음알이[識薀]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무상을 관찰할 때, 수행자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그리고 괴로움[苦]를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염오(厭惡)감을 갖게 되어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들의 무상함을 해체해서 봄(위빠사나)으로써 오온(五蘊)을 ‘나’ 혹은 ‘나의 것’으로 동일시하지 않고, 또한 ‘행위는 존재하나 행위 하는 자는 없다(有法無我)’는 평온한 심리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찰나(刹那) 생(生)ㆍ찰나(刹那) 멸(滅)하면서 그 본래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변하는 오온의 이런 성질을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가를 찾아내신 분이 세존이십니다.

• 세존께서는 부분들로 해체해서 해탈의 도를 가르치고 보여주셨습니다. 무엇을 해체하였는가 하면 명칭 또는 개념[施設, 빤냣띠]을 해체하셨습니다. 나라는 개념, 세상이라는 개념, 돈이라는 개념, 권력이라는 개념, 신(神)이라는 개념을 해체하셨습니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오온으로, 일체 존재는 12처로, 세상은 18계로 각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라고 설하셨습니다. 개념에 속으면 그게 바로 생사(生死)에 엉키고, 법(蘊-處-界-緣)으로 해체해서 보면 깨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 범부중생들은 실제 삶에서 보고 듣는 대상에 대해 이름 또는 개념으로 인식하여 받아들이게 되는데, 축적된 미혹함과 사견(邪見)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습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현상의 본성인 공(空)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세존의 가르침이십니다.

• 세존께서 『메기야 경(AN9:3)』에서 “메기야여,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가진 비구는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이 확립된다.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가진 자는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을 뿌리 뽑게 되고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다.” 라고 설하셨듯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완전히 바르게 알고 보면, 수행자는 고(苦)와 무아(無我)의 성스러운 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반야)를 깨닫게 됩니다.

• 수행자는 모든 현상의 무상을 꿰뚫어 볼 때마다 더 이상 감각적인 대상을 사랑스럽거나 소유할 만한 것으로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어떤 실체가 있다고 보는 무지에서 벗어나 내 마음속에 잠재된 탐욕과 갈애가 사라지고, 소멸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이것이 ⑭단계와 ⑮단계의 수행법입니다.

• ⑯단계에서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의 수행법은 나란 존재와 동일시된 것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조주 선사의 멋진 가르침의 하나인 방하착(放下着)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은 버린다는 것은 자살을 하거나 소유물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에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형성된 모든 것에 대해 무상 등의 결점을 보고 그 형성된 것의 반대인 열반으로 마음을 향하게끔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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