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바늘 경 (SN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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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바늘 경 (SN17:2)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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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瑜伽安隱)을 얻는데 방해물이 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낚시꾼이 미끼가 달린 낚싯바늘을 깊은 물속에 던지면 미끼를 발견한 물고기가 그것을 삼키는 것과 같다. 그러면 낚시꾼의 낚싯바늘을 삼킨 그 물고기는 곤경에 처하고 재난에 처하게 되며, 낚시꾼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낚시꾼은 마라 빠삐만을 두고 한 말이요, 낚싯바늘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든지 이득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을 때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탐착하면 그 비구를 일러 ‘마라의 낚싯바늘은 삼켰다. 곤경에 처했다. 재앙에 처했다. 빠삐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한다.”

3.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는데 방해물이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제거하리라. 그러면 일어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해설》



• 유가안은(瑜伽安隱)이라는 말은 빠알리 어(語) 요가케마(yogakkhema)를 중국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요가케마’는 yoga(속박)과 khema(안은함)이 결합된 낱말입니다. 초기불전에서는 네 가지 속박들로부터 안은하기 때문에 열반을 ‘유가안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네 가지 속박(족쇄)으로, 감각적 욕망, 존재, 사견(邪見), 무명을 들고 있습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낚싯바늘’의 비유를 통해 불교의 인생 철리(哲理)를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원음(原音)이 실려 있는 초기경전에서는 인간을 고(苦)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존재로 거듭거듭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외부의 대상 또는 사물에 묶어놓는 족쇄는 바로 욕망, 즉 즐거움을 추구하는 탐욕입니다. 즉 외부세계가 인간의 족쇄도 아니고 인간이 외부세계에 대해 족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눈은 즐거운 현상을 보고 싶어 하고, 귀는 즐거운 소리를 듣고 싶어 하고, 코는 즐거운 냄새를 맡고 싶어 하고, 혀는 즐거운 맛을 누리려하고, 몸뚱이는 즐거운 감촉대상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이와 같이 쾌락 추구의 밧줄이 강해지면 밧줄 그 자체는 더욱 짧아지고 이에 비례하여 인간 행동의 자유는 더욱 제한됩니다. 탐욕이라는 밧줄의 성질이 이와 같기 때문에 누군가가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를 비난하였다면 그 사람에게 크게 화를 내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는 이득이나 호의나 아첨에는 쉽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우리 제주사회에서도 각종 수상(受賞)이나 승진 또는 출판물의 출간, 고시합격, 박사학위의 수여, 조합장 및 마을이장의 당선 등을 공개적으로 과시하기 위하여 신문에 축하광고를 하는 제주 특유의 관례가 있습니다. 물론 그분들의 명예와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을 성취하셨기에 명예와 존경을 기리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으나 이런 축하광고문화가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뽐내기 문화‘는 그 개인 또는 가족, 소속 집단이 남들보다 잘났다고 여기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더욱 위대해지기를 바라지만 그럴수록 자아관념을 없애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반면에 우리가 남을 좀 더 많이 인정할수록 자기에 대한 애착은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우리 불교는 긍정-수용-배려의 아름다운 마음작용을 포괄하는 관용의 문화를 강조합니다. 비록 이득이나 명예나 칭찬이 영원한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생겨날 인연이 있을 때라야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가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정적 마음이 자라날 때 윤회의 족쇄가 자기를 옭아 묶게 된다는 점을 반조해야 합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어디까지나 출가 스님들을 염두에 두고 경책하셨습니다만, 재가불자들도 스님들에게 준 세존의 가르침을 윤리적 삶의 지침으로 삼아 이익과 명예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연으로 생겨나는 현상들이 얼마나 무상한지, 그리고 온갖 즐거운 대상들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를 곧바로 실상 그대로 아는 지혜를 계발해야 합니다. 정견(正見)이 계발되면 우리는 명예나 칭찬이라는 현상조차도 다만 연기된 것에 불과할 뿐임을 알게 되고 자아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법(담마)에 대한 확신이 더욱 커지고 법을 명예나 칭찬보다 훨씬 더 귀중히 여길 것입니다.

•인간세상[此岸]은 고해(苦海)이고 열반[彼岸]은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피안으로 기필코 건너가기 위해 타야할 뗏목, 즉 반야용선이 법(팔정도)이므로 이 중도를 닦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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