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자세[四威儀]에 대한 알아차림 경 (DN 22)
상태바
네 가지 자세[四威儀]에 대한 알아차림 경 (DN 22)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2.11 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전》



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身隨觀] 머무는가?“

2.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 ‘걷고 있다.’고 꿰뚫어 알고, 서있으면서 ‘서있다.’고 꿰뚫어 알며,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꿰뚫어 알고,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꿰뚫어 안다.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이 있구나.‘라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 있고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가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3.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이해하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 볼 때도 분명히 이해하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이해하면서 행한다. 가사와 발우와 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이해하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이해하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이해하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 잠들면서 / 잠에서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이해하면서 행한다.”



《해설》



• 선원(禪院)의 수행자들이나 재가수행자들은 좌선(坐禪)의 의의나 유익함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으나, 행선(行禪)의 참뜻과 유익함에 대해서는 바른 이해가 모자란듯합니다. 행선을 맨 처음 가르치신 분은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께서도 수행처소에서 일정한 거리를 왕복하시면서 행선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탁발을 하시면서 알아차리시거나, 전법을 펴시기 위해 길을 걸으실 때도 모두 행선을 하면서 걸으셨습니다. 필자가 성지순례 시 부처님께서 20여 년간 머무셨던 기원정사 내의 향실 옆에 행선했던 그곳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 부처님께서 <대념처경(장부)>에서 행선에 대하여 두 번이나 가르치셨는데, 본경에서 설한 대목이 바로 그 교설입니다. 행선은 좌선과 다음 좌선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수행방법으로서 명상수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알아차림(sati) 공부는 물을 끓이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물이 담긴 탕관을 달구려면 불을 지펴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땔감을 화덕에 넣어주듯이 알아차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아차림 사이사이 공백이 생긴다면 알아차림의 힘을 얻을 수 없고, 집중도 이루지도 못합니다.

• 행선은 걸으면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움직이고, 서고, 앉고, 눕는 수행인 행주좌와[四威儀]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 먼저 움직이는 수행인 행선을 잘해야 합니다. 수행자들은 발을 들고, 발을 앞으로 내밀고, 발을 내리고, 발로 바닥을 밟은 동작, 즉 “듦, 내밂, 내림, 밟음”의 네 단계 발동작에 선명한 파지(把持)를 기울어야 합니다.

• 수행자가 발을 듦, 발을 앞으로 내밂, 발을 내림, 발로 땅을 밟음”의 네 단계 발동작을 꿰뚫어 알게 됨에 따라 들어 올리는 발의 가벼움[火大], 발과 신체의 이동[風大], 아래로 내리는 발의 무거움[水大], 발로 땅을 밟을 때 발에 닿는 단단하거나 물렁함[地大]을 지각하게 됩니다. 즉 사대(四大)와 사대의 본질을 지각하게 됩니다.

• 수행자들은 네 단계의 발동작과 더불어 네 단계에 대한 알아차림의 순간이 있음도 알게 됩니다. 불교심리학에서 알아차림의 순간순간은 마음[名]이라 하고 발의 움직임은 물질[色]이라 하는데, 수행자들이 매순간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는다면 마음과 물질이 쌍둥이처럼 짝지어 나타남을 지각할 수 있을 만큼 수행은 가속도가 붙습니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대상과 아는 마음이 지속되어서 차츰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가 생깁니다.

• 수행자들은 네 단계의 발동작에는 그 동작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는 의도가 선행한다는 깨닫게 됩니다. 즉 모든 일이 조건이 함께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나아가 연기법을 깨달아 작은 예류과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지금 제주에는 ‘올레길’ 걷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자신의 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걷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은 발에 머물지를 않고 주변 풍광이나 동행자들과 이야기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걷는 것을 모르고 걷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사실 누구나 모르고 걸어 왔습니다.

• 역사적으로 앞서간 수많은 수행자들이 행선을 통하여 건강을 지키고 집중력을 키워서 성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행선은 번뇌를 억누르고 계율을 지켜 다음 단계로 고요함이 생기게 하여 그 결과 존재의 삼법인(무상/고/무아)을 파악할 수 있는 지혜를 증득하게 합니다. 이 지혜를 통해 대상에 대한 집착과 갈애를 없애고 고(苦)를 종식시킬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