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경 (AN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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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경 (AN 6:61)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4.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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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서 원형 천막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숫따니빠따』「도피안품」의 「멧떼야의 질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

3.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에게 “여기서 어떤 것이 첫 번째 극단이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극단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고 어떤 것이 바느질하는 여인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였다.

4. 비구들 사이에 이런저런 법담(法談)이 오고간 끝에 누구의 말이 잘 말한 것[金言]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세존께 다가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5. 한 곁에 앉아서 장로 비구들은 이제까지 있었던 대화를 빠짐없이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누구의 말이 잘 말한 것입니까?”

6. “비구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다 방편적으로 잘 말하였다. 나는 『숫따니빠따』「도피안품」의 「멧떼야의 질문」에서 이미 설하였는데, 이제 그대들에게도 설하노니 그대들은 잘 듣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라, 나는 설할 것이다.”

7.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이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여기에서 괴로움 끝내게 된다.”



【해설】



여래께서는 양 극단을 따르지 않고 중(中, 가운데)에 의지하여 법을 설하시는 분입니다. 『상윳따 니까야』의 「깟짜나곳따 경」(SN12:15)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극단이라 함은 감각접촉[觸]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인 육경(六境)에 부딪히는 것을 감각접촉이라 합니다. 예컨대 눈의 형색에 대한 감각접촉, 귀의 소리에 대한 감각접촉, 코의 냄새에 대한 감각접촉, 혀의 맛에 대한 감각접촉, 몸의 감촉에 대한 감각접촉, 마노(의식)의 법에 대한 감각접촉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 감각접촉에서 여섯 가지 느낌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모두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느낌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느낌은 항상 ‘지금여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내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싫은 느낌이 일어나면 끊임없이 도망 다니고, 좋은 느낌이 일어나면 끊임없이 매달리면 갈애를 일으킵니다. 이 갈애로 인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서 괴로움이 시작됩니다.[집성제] 본경에서 말하는 ‘감각접촉’이라 함은 현재의 자신의 존재, 즉 오온을 뜻합니다.[고성제] 왜냐하면 그것은 감각접촉을 통해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극단으로서의 감각접촉의 일어남이라는 뜻은 미래의 자신의 존재를 뜻합니다. 그것은 현재의 자신의 존재에서 쌓은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갈애는 두 개의 자신의 존재라 불리는 감각접촉과 감각접촉의 일어남을 깁고 꿰맨다는 뜻에서 다시 태어남[재생]을 가져오는 족쇄가 되고 생명의 형성을 유지시키는 수분이 됩니다. 갈애에 의해 휩싸인 사람들은 덫에 걸린 토끼처럼 날뛰고 족쇄와 속박에 묶여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성스러운 제자들은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애달파 하지도 않고, 모든 감각적인 접촉에서 멀리 떠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양 극단의 견해들에 이끌리지 않습니다. 출가사문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것이 없고, 자기 것이 없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탐욕을 떠나 인색하지 않으며 우월하다든가 동등하다든가 열등하다고 말하지 않고 갈애의 숲을 버립니다. 이것이 감각접촉의 소멸, 즉 열반입니다. 성자들은 갈애의 숲에서 해방됨으로써 존재의 이 언덕을 건너서 피안으로 향합니다.

초기경전(AN7:50)에 따르면 웰루깐따끼 마을의 난다마따 청신녀가 새벽에 『숫따니빠따』「도피안품」을 독경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청신녀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에게 큰 믿음을 가지고 보시공양을 올렸으며, 사대왕천의 천신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신통력과 갖추었고 불환과를 증득하였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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