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애 멸진의 짧은 경 (MN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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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애 멸진의 짧은 경 (MN 37)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5.0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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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동쪽 원림의 녹자모 강당에 머무셨다.

2. 그때 삼십삼천(제석천)의 왕 삭까(sakka)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삭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간략하게 말하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갈애를 멸진하여 해탈하고, 구경의 목표에 이르고, 구경의 유가안은(瑜伽安隱=열반)을 얻고, 구경의 청정범행을 성취하고, 구경의 완성을 성취하여, 신들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 됩니까?”

3. “신들의 왕(삭까)이여, 여기 비구는 ‘모든 법들은 집착할만한 것이 못 된다.’고 배운다. 신들의 왕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모든 법들은 집착할만한 것이 못 된다.’라고 배우면 그는 모든 법들을 완전히 안다. 모든 법들을 완전히 안 뒤 모든 법들을 철저히 안다.”

4. “신들의 왕이여, 여기 비구는 모든 법들을 철저히 알아 그가 어떤 느낌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즐거운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이든, 그 느낌들에 대해서 무상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그가 이렇게 머물 때 세상에서 그 어떤 것에도 취착하지 않는다. 취착하지 않으면 번민하지 않고, 번민하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5. “신들의 왕이여, 간략하게 말하면 이렇게 해서 비구는 갈애를 멸진하여 해탈하고, 구경의 목표에 이르고, 구경의 유가안은을 얻고, 구경의 청정범행을 성취하고, 구경의 완성을 성취하여, 신들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 된다.”

6. 그러자 신들의 왕인 삭까는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고 감사드리면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해설】



불조(佛祖)께서는 예부터 불교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고(苦)라 함은 사성제의 첫 번째인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고성제)를 말하고, 그 낙(樂)이라 함은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의 경지, 즉 세 번째인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멸성제)를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취착이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고, 갈애(渴愛)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애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므로 오온(五蘊)이라는 이 몸뚱이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본경에서 집착할만한 것이 못 되는 모든 법들(sabbe dhamma)이란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열두 가지 감각장소[12處], 열여덟 가지 요소[18界]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법들은 영원하고 즐겁고, 자아라고 취하더라도 무상할 뿐이고, 괴로울 뿐이고, 무아일 뿐이어서 집착할만한 것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의도[行]는 재생연결식의 특별한 조건이 되어 업(kamma)의 들판 위에 존재로 태어나게 되는데, 갈애는 수분과 같은 역할을 하여 그 존재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세존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이 몸뚱이는 인연법의 결과로 생겨났습니다. 마치 컵이나 접시 등의 가사용품과 같아서 오래 사용하다보면 보기 흉하게 이가 빠지기도 하고 더러는 아예 박살이 나서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변화 속에 존재하는 것이 그 실상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눈으로는 형형색색의 물건을 보고 귀로는 온갖 소리를 들었고, 또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도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중생이든 그가 원하는 상태로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으며 모든 것은 변화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분해되고 흩어진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재산이 적어도 고통스럽고, 많아도 역시 고통스럽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고통스럽고 젊으면 젊은 대로 고통스럽습니다. 이래저래 세상은 고통뿐이라고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지혜가 생기면 수행자는 곧 덧없음[無常]과 괴로움[苦]란 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늙고 병들어 가는 몸, 그리고 그 몸의 아픔과 고통을 알아차리는 마음, 이 둘을 세존께서는 법(dhamma)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육신과 같이 형체가 있는 것을 색법(色法)이라 하고 생각이나 느낌, 인식과 같이 비(非)물질적인 것을 명법(名法)이라 구분하는데, 이 둘을 합친 것이 바로 오온(五蘊)입니다.

사실 진아(眞我)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고 오로지 법[名色]들만이 그 속성대로 끊임없이 생멸하고 있음을 일체지로 알아차리고 가르치신 분이 세존이십니다. 무상을 알고 보면 붙잡기를 하지 않고 놓아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갈애의 멸진입니다.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는 경지가 곧 열반입니다. 팔정도의 수행을 완성한 비구는 생멸의 집을 짓지 않고 완전한 열반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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