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야 경 (Stn:2)
상태바
다니야 경 (Stn:2)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7.16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전》



1. [다니야]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고, 마하 강변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불이 켜져 있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분노하지 않아 마음의 황무지가 사라졌고, 마하 강변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내 움막은 열리고 나의 불은 꺼져 버렸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2. [다니야] “내 아내는 온순하고 탐욕스럽지 않아 오랜 세월 함께 살아도 내 마음에 들고 그녀에게 그 어떤 악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내 마음은 내게 온순하여 해탈되었고, 오랜 세월 잘 닦여지고 아주 잘 다스려져, 내게는 그 어떤 악도 찾아 볼 수 없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3. [다니야] “나 자신이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고 건강한 나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니 그들에게 그 어떤 악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나는 누구에게도 대가를 바라지 않아, 내가 얻은 것으로 온 누리를 유행하므로 대가를 바랄 이유가 없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4. [다니야]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고, 문자 풀로 만든 새 밧줄은 잘 꼬여 있어, 젖을 먹는 어린 소가 끊을 수 없을 것이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황소처럼 모든 (번뇌의) 속박들을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넝쿨(부정한 몸)을 짓밟아, 나는 다시 모태에 들지 않을 것이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5. [마라 빠삐만]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기쁨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없습니다.

[세존]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슬퍼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슬픔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



【해설】



불조(佛祖)께서는 불교의 목적을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離苦得樂)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금생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세존께서는 궁극적 행복으로서 열반의 실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경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세존께서 사왓티(사위성)에 머무실 적에 거기서 약 14㎞떨어진 마하강변에 소치는(牧牛) 사람 ‘다니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3만 마리의 황소를 키우며 젖을 짜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잘 보살피며 세속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소치는 일은 정주(定住)하기 곤란해서 우기(雨期)의 4개월은 고지대에 머물고 건기(乾期)의 8개월은 하천변이나 호숫가에 머물며 유목(遊牧) 생활을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월동(越冬) 준비를 하듯, 그는 우기 철에 접어들자 모든 준비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면서 마침내 골짜기와 언덕을 채우면서 갑자기 커다란 구름이 비를 뿌리자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라는 시(詩)를 읊으면서 자신의 행복을 노래하였다고 합니다. 세존께서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신통력으로 다니야의 처소에 몸을 나타내서 다니야가 농경생활의 행복감을 노래할 때마다 그 대구(對句)가 되는 청정한 삶, 즉 출가수행자의 명상적 삶의 유익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이 꺼져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의 모태에 들지 않는 청정한 삶을 노래하신 것입니다.

본경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마라 빠삐만이 끼어들어 세존의 가르침에 반대하며 세속의 행복을 부추기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빠삐만은 욕계(欲界) 여섯 번째 하늘인 타화자재천에 살면서 출가 수행자들이 감각적 쾌락의 욕계를 벗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자로서 세존께서 깨달음을 얻기 전 6년과 깨달으신 뒤 1년 동안이나 세존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재생의 근거가 되는 소유(집착)를 강조하면서 세존의 위없는 해탈을 방해한 천신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더럽히는 근본 원인으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 세 가지를 꼽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업력으로 작용하고, 이로 인한 업보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초기 경에서도 탐(貪), 진(瞋), 치(痴)를 여의지 않고는 태어남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삼독을 말끔히 지우면 윤회의 족쇄를 벗어버리게 됩니다. 아라한의 성자는 아직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미 세상을 넘어선 경지에 들어 비록 그의 행위는 있지만 이는 삼독(三毒) 심(心)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서 업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諸行莫作], 선행을 닦는 것[衆善奉行],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自淨其意].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是諸佛敎]” 은 <법구경 183>에 나오는 저 유명한 통불계(通佛戒)입니다.

열반은 탐(貪), 진(瞋), 치(痴) 삼독이 완전히 소멸된 어떤 경지입니다. 부처님의 교법에 믿음에 내고 명상 수행을 계속하는 사람이라면 이 삶 속에서 열반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