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특집 대담<조계종 도림 법전 종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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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특집 대담<조계종 도림 법전 종정예하>
  • 제주불교
  • 승인 2005.05.1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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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자리의 근본을 등불같이 밝혀야돼”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달 말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조계종 법전 종정예하가 제주를 방문했다. 선불교의 법맥을 이어 출가한 이래 줄곧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수행에 전념해온 법전 종정 예하를 한라산 삼광사(주지 현명스님)에서 만나 뵈었다. “촌구석에 사는 늙은이한테 뭐 들을게 있다고 찾아 왔느냐”며 “비공식 방문 일정이라 여러 사람에게 폐 끼치기 싫었는데…”하시면서도 너그러운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종정예하와의 대담은 본지 편집인 시몽스님(법화사 주지)이 진행하고 정리는 김봉현 편집부장이 맡았다. <편집자>



시몽 스님. 매우 건강해 보이십니다.

종정예하 예. 지금까지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잘 살아왔습니다.

시몽 스님의 일상은 어떠하십니까? 조계종단의 종정 소임을 맡기 이전과 이후가 다른 것이 있는지요?

종정예하 본래 나는 출가한 이후 지금까지 선방을 떠나서는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종단의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가람을 수호하고 삼보를 호지하는 일들은 간혹 있었으나 그 또한 선방의 연장선상이었습니다. 지금 조계종을 상징하는 종정이라는 소임을 맡고 있으나 내 생활에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시몽 스님께선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의 최고 어른이신 종정의 위치에 계십니다. 하지만 제주 불자들 중 많은 분들이 종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제주 도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종정예하 흔히 세상 사람들은 스님들에게도 높고 낮은 차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터이지만 수행자의 본분에서는 그 같은 세속적 차별은 없습니다. 그러나 종단의 위계절차상 소임을 두게 됩니다. 종정이라는 소임도 마찬가집니다. 절집에서 맡겨진 소임 역시 본분사를 떠나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조계종은 수행이 빠져버리면 생명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정의 역할 또한 그와 같습니다.

시몽 큰스님을 제주도에서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에 오신 특별한 뜻이 있으신지요?

종정예하 제주도는 젊은 시절부터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법회의 초청을 받아 왔었기 때문에 법회 전 날 왔다가 법회가 끝나면 곧장 수행처소로 돌아가곤 했지요. 그래서 제주도의 풍광이라던가 제주도민의 생활상, 그리고 종교문화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 번은 마음먹고 일부러 제주도의 산천을 둘러보기도 하고 현지 불교성지참배를 위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시몽 큰스님께서 이번 제주 방문에 대하여 도민들은 물론 특히 불자들의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주 방문의 소감을 한말씀 해주시지요.

종정예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주는 일 때문에 왔다 금방 돌아가곤 해서 느낀 바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 이름 난 관광지와 이 곳 저 곳을 둘러본 소회는 아름다운 풍광과 제주인의 순수한 인간적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저 높은 한라산과 어디에서든지 바라보이는 저 넓은 바다는 이곳에 사는 도민의 마음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제주도도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내가 듣기에 특히 제주는 200여년에 걸쳐 불교가 없는 암울하고 적막한 시절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역사적 사실이 매우 궁금하였는데 그 역사에 대해서 좀 들려주세요.

시몽 예. 제주는 17세기 이후에 나타난 문헌을 살펴보면 무사·무승·무니로서 절도 없고 비구·비구니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종교적 의미에서 본다면 참으로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섬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이같이 불교가 사태를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막막합니다. 아마 제주 사람들은 역사를 망각하고 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시몽 제주에 오셔서 제주의 대표적 사찰을 방문하셨습니다. 육지와 비교해 특별한 소감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종정예하 나는 제주불교의 역사에 대해서 전해들은 바가 없었는데, 오늘 시몽스님으로부터 제주의 지난 뼈아픈 역사를 듣고 제주불교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뭍에서 바라보는 제주 불교는 제주 사람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세계를 향해 크게 도약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주도 곳곳에 세워진 시설들이 국제적입니다. 국제 자유도시로 발돋움하고 평화의 섬 제정이 그 증거입니다. 그에 걸맞는 제주사찰을 만들어나가는 움직임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시몽 스님은 한평생 선원을 떠나서 지내신 적이 없으십니다. 특별히 선원의 생활에 마음을 두실 때가 어느 때 신지요?

종정예하 나는 불갑사로 출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백양사에서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백양사는 만암 노사, 묵담 스님, 인곡 스님과 같은 선지식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글공부하는 스님들과 염불 정진하는 스님들이 있었지요. 운문암은 선원이었는데 한 철이면 30여명의 대중이 모여 정진하였습니다. 그때에 나는 염불하고 경전을 배우는 것보다 자꾸 선방 쪽으로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지요. 다 떨어진 누더기 가사를 걸쳤으나 고요하고 맑은 분위기의 선방 스님들이 좋아 보였습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않아 온 종일 면벽을 하고 있는 스님들을 바라보면서 선방에 대한 동경심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아마 이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선방을 지킨 것 같습니다.

시몽 스님께서는 출가한 이후 화두를 붙들고 평생을 사셨습니다. 구름처럼 물처럼 이 절에서 저절로 선지식을 찾아 살아오셨습니다. 스님에게 본분의 안목을 갖게 하신 스승을 말씀해 주십시오.

종정예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사미계를 받고는 곧장 백양사에서 생활하면서 만암·묵담·인곡 스님들의 훈도를 받았습니다. 나에게 선의 길로 들어서도록 영향을 주셨던 분은 운문암의 조실이었던 인곡 스님이었습니다.

시몽 스님께 있어서 화두를 깨뜨린 시절은 어느 때 인지요?

종정예하 문경 묘적암에 있을 때였던 같습니다. 그 때 내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간의 공부에 진척도 없고 해서 답답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늘 체한 것처럼 가슴이 무겁게 짓눌려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뭔가 결단을 내려야하겠다 생각했습니다. 묘적암에서 신도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화두를 붙잡고 정진했습니다. 참선하고 나무를 하고 옷을 입은 채로 두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이런 생활을 수 년 간 반복했던 적이 있었지요. 이런 과정을 겪고서야 수행에 진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몽 한국불교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합니다. 조계종이 창종 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주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하여 입에 오르내리기조차 싫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정예하 승가에게 부처님은 재세시부터 화합을 당부하셨습니다. 승가는 구도의 뜻을 품고 출가한 사람들, 성별 연령 그리고 학력의 유무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이와 같이 각자의 업식이 다르고 성장 환경 등이 다른 사람들이 구도적 일념으로 정진을 계속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습관이 저절로 분출되어 승가화합을 해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세속적 일일 것입니다.

사실 승단이 제일의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화합을 이룩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승가발전은 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자의 본분을 항상 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릴 때 중생의 업식이 자연 폭발하여 세속적 습관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간의 종단 분규 또한 중생심을 떠나지 못한 일부 승려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당부하신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견지하면서 수행에 정진하는 대중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래 조계종과 한국 승가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들의 교육향상에 있어서 제도적 보완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국민들로부터 존중받는 승가상이 확립될 것으로 믿습니다.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시몽 제주에 어려운 걸음 하셨으니 제주도의 불자들과 제주불교신문 독자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말씀을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종정예하 제주도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불심이 강한 것으로 압니다. 또 직접 이렇게 와서 만나보니 실제로 신앙의 열도가 높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자기 수행하는데는 좀 인색하지 않나 싶습니다.

평소 생활 속에서 수행이 몸에 배어있어야 합니다. 불교는 자아의 계발, 진아의 체험을 주로 한다는데서 우리의 본성인 불성(佛性)에 대한 인격성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지요. 자아(自我)를 구한다 하더라도 아직 체험 못한 불성을 흠모해서 갈구하는 형식이 필요합니다.

재가신도들에게 권하고 싶고, 또 항상 지켜야 할 수행의 방법은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입니다. 곧, 마음에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布施), 행동과 언어를 바르게 하는 계율을 지키는 지계(持戒), 마음을 잘 다스려 참고 견디는 인욕(忍辱), 선행(善行)을 끊임없이 닦아나가는 정진(精進), 들뜬 마음을 거두어 근본 마음자리에 고요히 잠기는 선정(禪定), 우주 만유의 실상은 일체 지혜공덕을 원만히 갖춘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여의지 않는 지혜(智慧)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육바라밀을 잘 닦아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시몽 이제 곧 불기 2549년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해마다 오는 불탄일입니다만 언제나 새롭게 새겨야 할 가르침이 있을 듯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아야 하겠습니까.

종정예하 부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이 세상에 와서 뭇 중생들을 제도하고 가신 분입니다. 그런 성인이 나투신 날이므로 경건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그 뜻을 받들어야겠지요.

그러나 단지 떠들썩하게 기념행사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어떻게 사바의 중생들을 제도했는지 그 뜻을 생각하고 그 위대함을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생각만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뜻에 대해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탄생직후 사방으로 일곱걸음을 걸으시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의 ‘유아’는 사람마다 지닌 마음자리, 곧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모든 중생의 마음의 근본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마음 안에서 부처를 찾으세요.

그리고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사부대중 모두가 성불을 위해 초발심의 원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길 바랍니다.

시몽 큰스님. 긴 시간 감사 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조계종정 법전스님



1925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 1939년 영광 불갑사에서 설호(雪浩)스님을 계사(戒師)로 설제(雪醍)스님을 은사(恩師)로 사미계 수지. 1948년 백양사에서 만암(曼庵)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및 보살계 수지. 1952년 이래 창원 성주사, 문경 갈평토굴, 태백산 도솔암, 문경 대승사 윤필암·묘적암, 김용사 금선대, 범어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참선수행. 1981년 종회의장 1982년 총무원장 역임. 1996년 해인총림 방장 추대. 2000년 10월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 2002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대 종정에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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