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목적 경 (AN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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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목적 경 (AN11:1)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10.1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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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난다]“세존이시여, 유익한 계(戒)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유익한 계들의 목적은 후회 없음이고, 이익은 후회 없음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후회 없음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후회 없음의 목적은 환희이고, 이익은 환희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환희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환희의 목적은 희열이고, 이익은 희열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희열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희열의 목적은 편안함이고, 이익은 편안함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편안함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편안함의 목적은 행복이고, 이익은 행복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행복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행복의 목적은 삼매이고, 이익은 삼매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삼매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삼매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如實知見]이고, 이익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은 염오(厭惡)이고, 이익은 염오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그러면 염오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염오의 목적은 탐욕의 빛바램[離慾]이고, 이익은 탐욕의 빛바램이다.”

[아난다]“세존이시여, 탐욕의 빛바램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존]“아난다여, 탐욕의 빛바램의 목적은 해탈지견이고, 이익은 해탈지견이다.”





【해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세존께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금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 궁극적 행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행복(망갈라)의 의미는 인간의 행복(=금생의 행복), 천상의 행복(=내생의 행복), 열반의 행복(=궁극적 행복)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세존께서는 인간은 자기에게 맞는 기술과 학문을 익히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금생의 행복을 얻게 되고, 이에 더하여 보시의 공덕을 쌓게 되면 내생에는 천상과 인간으로 태어나 장수와 온갖 복락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비심은 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자비로운 그만큼 그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복락을 누리고 또 내생에 가서도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인생은 윤회의 황야를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묘사되는데, 자비의 공덕은 그 자신의 의지 처가 되어 그 자신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합니다.

·불조(佛祖)께서는 불교의 목적을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離苦得樂]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불교수행의 목적은 이 언덕인 삼계의 윤회로부터 저 언덕인 열반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최종의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한 가지의 중간 목적을 순차로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본경의 가르침입니다.

·그 첫 번째 중간 목적이 지계(持戒)입니다. 계행은 마음의 밭갈이로서 정신적 오염원으로부터 자신을 수호하여 자칫하면 유혹에 빠지거나 본의 아니게 분쟁에 휘말려들 위험이 많은 현실에서 우리를 온갖 위험과 곤경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울타리 역할을 합니다. 계행을 지키는 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 후회하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가진 자들은 스스로 기뻐합니다. 희열은 항상 기쁨의 느낌과 함께 합니다. 희열은 선정의 다섯 가지[五禪支]의 하나로서 집중명상에 몰입할 때 수반되는 심리현상입니다. 수행자의 마음이 초선정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있을 때 수행자는 평등심으로 자기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고, 마음은 선정의 경험에 매우 즐거워하여 기꺼이 그 선정 속에 침잠하므로 기쁨이 내면에서 솟구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희열로 동요하거나 들뜨지 않도록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것이 편안함입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가볍고 유연한 상태에 들어가면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길들어진 유순한 마음이 진정한 행복(슈카)을 가져와 초선정에 들어갑니다. 즉 본삼매를 성취하면 수행자는 탐욕, 성냄, 자만과 같은 악하고 불건전한 정신적 상태에서 해방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삼매에서 출정하면 억압된 감각적 욕망이 되살아나오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삼매는 궁극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시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위빠사나[內觀, 洞察]는 신비가 아니라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불교 특유의 수행법입니다. 냉철하게 과학자적인 태도로 내 몸과 마음을 분석하여 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나’라고 주장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꿰뚫어 보아 모든 번뇌를 뿌리 뽑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은 약한 위빠사나를 말하고, 염오는 강한 위빠사나를, 탐욕의 빛바램은 도{magga)를, 해탈은 아라한과를 말합니다.

·우리불자들은 아라한을 증득할 때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중생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신과 인간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열한 가지 중간 목적을 순차로 거쳐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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