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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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 강승오 기자
  • 승인 2005.05.30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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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이 제주를 찾아왔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2005 시민환경강좌’에 강연차 방문한 걸음이었다. 오랜 단식으로 안타까움을 갖게 했던 지율스님은 다행히 건강한 모습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있는 어조로 현대인들이 고민해야할 생명관에 대한 스님의 생명이야기를 지면에 소개한다. <편집자>



   
 
   
 
제주는 10년전 열흘정도 도반스님들과 함께 도보행진을 했던 적이 있어요. 제주에 내리면서 10년전 모습과 지금의 제주는 얼마나 변해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도착해서 보니 역시 ‘10년이라는 세월이 제주도를 많이 변하게 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때만해도 골프장도 몇군데 있지 않았고, ‘제주도에 과연 환경문제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아울러 하게 됐어요.

이곳에서 천성산에 대한 문제를 논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제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출가 후 쭉 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 무관심했고,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그 변화하는 모습에 놀라고 미래의 책임 때문에 놀라고 당혹스러웠던 것이지요.

제가 천성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천성산 내원사에서 면벽·참선수행을 하던 어느날 산길을 걷고 있는데 포크레인으로 바위를 깨고 나무를 캐는 현장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돌아와서 벽을 보고 앉아 있는데 포크레인과 작업현장이 계속 떠오르고 그 공사 소리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도저히 지워지지 않아서 가까운 도반스님과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았어요. 올라갈 때 1회용 카메라를 들고 멀리서 사진을 찍다가 마침내 포크레인 앞에 서게 됐는데 순간적으로 제 입에서 “당신들 거기서 뭐하는 거야. 당장 내려와!”라는 소리가 나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말은 작업하시던 분께 한말이 아닌 내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해서 천성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죠.

저도 처음에는 천성산에 그렇게 많은 늪과 계곡과 그렇게 아름다운 동·식물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다만 ‘아름다운 산’이라는 보편적 가치관만 있었죠. 천성산 공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그 가치를 내세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천성산을 오르기 시작했죠. 50여번을 오르내리면서 22개 늪, 12개 계곡, 39개 저수지가 있고, 그 속에 어떤 생명이 살고 있는지 조사를 하게 됐어요.

아울러 천성산의 전설과 숨은 이야기,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서 보편적 이미지에 국한됐던 천성산에 색다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제가 펼친 천성산 지킴이의 시발점이었지요.

실제로 이렇게 하고 보니 천성산이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됐다는 것도 알게 됐죠. 이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잘 알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천성산은 6개 정부 부처에서 10개의 보호구역으로 묶어 놓았던 것이었죠.

이렇게 조사를 하며 놀랐던 것은 제가 주로 환경부를 대상으로 운동을 했는데, 그렇게 많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공사를 할 때에는 단 한번도, 그 누구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단지 책상에서 서류로만 검토했다는 것이에요.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죠.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들이 지역의 주민과 역사, 문화, 자연환경 등 미래지향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급급한 사업들이 얼마나 큰 낭비를 가져오는지 알지 못하는게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얼마전 서울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을 모시고 초록의 공명 수업을 준비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왜 그러세요?”라고 물으니 한 선생님께서 “스님의 말씀은 너무 아름다운데 저는 도롱뇽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도롱뇽 수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이말을 듣고 ‘선생님들이 도롱뇽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도롱뇽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이말은 곧 이땅에 생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제는 눈덮인 산을 걸을 때 토끼발자국 하나 발견할 수 없다’라는 어떤 분의 말을 들었어요. 우리 주위의 생명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실제 산에도 이제는 야생이 없어요. 얼마전 천성산에 솔잎혹파리 방제약을 뿌린 적이 있는데 그해 산에서 산새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작은 벌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벌레들조차 보이질 않더라구요. 그러더니 이듬해 봄에는 꽃들도 피지 않는 거에요. 벌과 나비가 없어지니 꽃들이 수정을 못해서 피지 못했던 것이죠. 그래서 방제약을 뿌리지 못하게 했는데 그 후 3년이 지나서야 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더라구요.

도롱뇽 소송을 보더라도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대규모 국책사업을 그까짓 도롱뇽 한 마리 때문에 막을 수 있느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생태계 한 부분이 망가지는 것이 결국은 전체 생태계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환경이 손실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얼마전 독일의 한 갯벌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 갯벌은 1년에 800만명이 다녀간다고 하더라구요. 다만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그 풍광만 보기 위해 그 인원이 찾는다고 합니다.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는 그 독일의 갯벌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생태적으로 더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곳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이용하기 위해 그 옆을 매립해 영화관을 짓고 축구장을 만들고 있어요. 그것이 과연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자연의 한 부분은 곧 우리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을 제대로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현재의 질병이나 자연 파괴로 오는 불편함을 과학의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의 빛과 소리, 음식을 통해 우리의 생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에는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지키고 가꿔나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놓치면서 과학적인 부분에서 그런 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업적에 대해서는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생명’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만날 수 있는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그 가치를 지니고 이땅에 온 것인 만큼 인간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이용하고, 훼손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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