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두주줄교성지순례-관나암, 그 세월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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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두주줄교성지순례-관나암, 그 세월을 품다
  • /임창덕 기자
  • 승인 2016.06.02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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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람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울리고. 그 울음소리는 내맘 속으로 스며들어 맘속 한구석에 여운으로 자리 잡아 다시 한 번 너울댄다. 너울거리는 맘을 다잡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걸음을 옮긴다. 맑은 물소리와 숲풀의 이야기가 들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 소리는 이 봄날 청량감을 더해준다.

나무들 사이로 계곡이 보이고 건너편 나무들이 시선을 막고 무엇인가를 감싸안은 듯 그 모습을 드러내지를 않는다. 김보성 제주불교청년회 회장님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따라 계곡쪽으로 내려갔다. 내려가기 전 길은 콘크리트로 되어있고 숲풀 사이로 보이는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아주옛날 선인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길인 듯. 그 길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 길은 언제 생겨났지, 길이 좁고 불편할 것 같은데……. 하지만 다시 주위를 보니 그 길은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안내자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길이란 그런 것 같다. 내가 가보면 쉽고, 가보지 않으면 두렵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길을 그렇게 가고 또 갈 것인가. 그 길은 항상 열려있는데 어느 순간 나는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게 두렵다.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단 하나만을 가야하는 그 부담감이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홀로 가고 또 어떤 이들은 그룹을 이루어 간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우리는 언제나 고민을 한다. 저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로 갈 것 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결정을 하면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결정에 따라 노력하면서 그 길로 걸어 갈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살이가 어디 그렇게 녹록한가. 자신의 갈 길을 정하고도 수많은 후회를 하지 않는가.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길로 왔지. 다른 길로 갔으면 더욱더 좋았을 걸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다른 길도 지금의 길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길도 인연이 있고 저 길도 인연 따라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어떤 길도 세상사 인연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연이란 언제 어디서든 다가온다.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하지만 인연은 인연인 거다. 지나고 보면 나쁘고 좋고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내가 있는 한 나쁜 인연이든 좋은 인연이든 항상 만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게 내가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다. 삶이 사라지면 인연의 끈은 매듭을 풀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게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가파르고 좁은 오솔길을 내려 가보니 어느 시절에 썼는지 알 수 없는 마애명 보인다.

관나암. 필체가 아름답다거나 신비롭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나는 거기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난다. 바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또 다른 나를 보았다.

세월이 흘러 산천이 변하고 다시 물이 흘러 수목이 피고지고를 수 없이 했던 것처럼 이곳도선인들이 머물고 갔을 법하다. 마애명을 새긴 것을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그 마애명이 언제적 글씨인가가 궁금해진다.



이런 질문을 하고 보니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될 것을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그게 어제 적어놓아도 지금 내가 보는 시점에서는 과거였을 것을 참 어리석은 질문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궁금증을 내려놓으니 마애명이 더욱더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모양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계곡이 바위를 감싸 안으니 바위에 새겨진 마애명이 힘은 더욱더 커 보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작은 마애명 하나하나가 어떤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되어 연결되는 듯이 느껴지면서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또 무슨 인연의 끈인가.’ 그리고 ‘저 바위가 홀로 서 있는 게 너무 처량해서 자신을 지켜주라고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게 아닐까.’, ‘그럼 내가 이 신비한 바위를 세상에 알려 많은 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세상에는 신비롭고 웅장한 보물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곳 관나암 이라고 써진 바위 앞에 서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찾은 인연의 끈이요. 이곳이 바로 내가 찾는 보물이 아닐런지.

그리고 저 바위의 수많은 추억들을 미래의 인연들에게 남겨줘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내가 찾아와서 이곳에서 진리를 얻고 스스로 깨달아 그 시대의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항상 세상은 돌고 돌아 다시 원래 자리로 갈 것 같은 느낌은 나와 저 바위의 인연이 끈이 어떤 형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서 나왔다. 내가 미래에 다시 이곳으로 찾아와 나처럼 느끼고 갈 수 있도록 지금의 내 마음을 저 바위에게 두고 먼훗날 내가 다시 찾아와서 저 바위를 보고 과거를 추억할 수 있으리라.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불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항상 내 옆은 부처님이 계셨고 언제나 우리 식구들은 부처님 법 앞에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그래서그런지 나는 언제나 절에 가면 마음이 편했다. 그곳은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향냄새가 나는 곳이고 맑은 풍경소리가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나처럼 부처님에게 삼배를 하고 사찰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내 몸과 맘은 편안했다. 언젠가 아들과 함께 어느 절에 간 적이 있는데 아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저기 있는 저 집은 크고 좋아 보이는데, 저거 얼마짜리야?”

속으로 깜짝놀라면서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답해준 것이 기억난다.

“아들아! 저 집은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서 돈으로 살 수가 없단다.”

그런데 여기 관나암을 보니 비로소 아들에게 그 답을 제대로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아! 저 집은 어느 누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있어도 너의 것이 된단다.”



다시 길을 간다. 나의 과거와 현재의 공간을 연결해주는 저 계곡 돌다리를 건너, 그 치열한 인연들이 살아서 숨 쉬던 옛 사찰 영천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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