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라문 경 (AN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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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라문 경 (AN3:5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2.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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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으로의 초대

《경전》

[두 바라문]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들은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된 바라문입니다. 저희들은 아직 덕행을 하지 못했고 선행을 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보호해줄 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들을 훈도해 주시고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들을 가르쳐주십시오. 그것은 저희들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세존]

“참으로 그대 바라문들은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아직 덕행을 하지 못했고 선행을 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보호해줄 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라문들이여,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이 세상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바라문들이여, 이와 같이 이 세상이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의해 탈 때 몸으로 자제하고 말로 자제하고 마음으로 자제합니다. 그러면 그 자제함이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에게 보호, 의지, 섬, 귀의처, 버팀목이 됩니다.”

[게송]

“집이 불탈 때 가져나온 소유물과 타지 않은 것

그것은 집 주인에게 크게 쓸모가 있듯이

그와 같이 세상이 늙음과 죽음에 불탈 때

보시로써 자신을 지켜라.

이미 보시한 것은 잘 지킨 것이니라.

이생에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자제하고 살면서 공덕을 지은 것

그것이 죽을 때 그에게 행복을 가져오리.“

【해설】

석가모니 부처님 제세 시에 고대 인도에서 120살까지 장수한 큰 스님들이 계십니다.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 아난다 존자, 박꿀라 존자 등. 특히 박꿀라 존자는 80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한 늦깎이나 출가한 지 8일째 되던 새벽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경에 나오는 두 바라문도 장수하여 유루(有漏)의 복을 다 누린 사람들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에서 세존께 법문을 청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거의 백지상태인데다가 가장 준비 없이 맞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임종의 자리에 처하여, 몸이 그 어떤 항거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춘 사람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죽음이 자리 잡을 대 갑자기 허를 찔리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死隨念]을 익히는 것이 좋다고 초기경전에서 여러 번 설하고 있습니다. 또 『증지부』에서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악업을 짓지 않으면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설하십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성질이 못된 사람은 미혹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덕이 있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확고하게 설하고 계십니다.

‘마하나마’라는 석가족 신도가 부처님께 이렇게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가령 길에서 사고를 만나 갑자기 죽게 되면 다음 생에서는 어디에 태어나게 될 것인지 몹시 걱정이 됩니다.”라고.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을 기르고, 계율을 닦고, 법문을 듣고, 보시를 행하고, 지혜를 키워온 사람은 그런 두려움을 품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몸을 문으로 하고, 말을 문으로 하고, 마음을 문으로 하여 다양한 업을 짓고 이런 업의 과보에 얽어매어서 선처와 악처로 생사윤회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생사여로의 과정에서 선업은 진정한 동반자로서 친지와 같으므로,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의지 처로 삼듯 선업과 부처님의 교법에 의지하는 것이 바른 삶의 길이요, 또한 평화로운 죽음을 준비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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