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처인 것을 아는 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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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처인 것을 아는 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3.0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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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스님 지상법문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의 법문을 이 번 주 지상법문에 실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닦을 것인지를 스님은 자상하게 알려주십니다.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음을 청정히 할 때 우리가 깨달음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합니다. 살아있는 선지식의 울림이 느껴집니다. 지금 바로 우리가 부처인 것을 깨닫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옵니다. <편집자 주>

 

자기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목적을 향해서 부지런히 정진해 왔다고 제가 보고 있습니다. 공부란 도대체 뭐냐? 불법에서 말하는 공부는 무엇이겠어요? 공부란 자신을 향해서 볼 때 나의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것입니다. 

우선 몸부터 먼저 보죠. 어떤 것이 나의 몸이냐. 몸을 볼 때 몸이 바로 되어 있다고 하면 그 상태로 유지하면 될 것이고, 몸이 바로 되지 못하고 비뚤어졌다든지 병들었다든지 고장 났다고 하면 고쳐야 할 것입니다. 

몸에 이상이 생기고 탈이 났을 때는 반드시 무슨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음식을 잘 못 먹었다든지 너무 굶었다든지 너무 과로했다든지 너무 편안하게 있다든지 하게 되면 몸이 거기서 병이 나든지 아마 이상이 생길 것입니다. 

몸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앉아 있을 수만 없잖아요. 때로는 일어서야 하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움직이고 그래서 우리의 생활이란 ‘행주좌와’ 가기도 하고 가만히 머물러 있기도 하고 앉아있을 때도 있고 누워있을 때도 있다 이겁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있고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없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내 몸을 그중에 입정하겠다고 하는 모습은 보통 입정이라고 하면 움직이고 있던 동작의 모습을 쉬고 좌복 위에 조용히 가부좌를 틀어 혹은 반가부좌 자세를 합니다. 

모든 동작 중에서 조용히 있을 때, 누워있는 모습과 앉아있는 모습은 다릅니다. 앉아 있을 때 몸이 흐트러졌다거나 허리가 굽어졌다 하는 것이 있으면 허리가 착 들어가야 됩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각 선방 신도들이 좌복에 앉아 있을 때도 자세가 제대로 된 이가 간혹 있긴 한데 거의 다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 신체 중에 가장 중심이 척추입니다. 비뚤어지면 안 되고 허리가 에스자로 허리를 짝 펴고 있어야 돼요. 그런 자세로 당당하게 걸어 다녀야 합니다. 요새는 젊은이들도 컴퓨터니 핸드폰, 스마트폰이니 해서 걸어갈 때도 웅성웅성합니다. 자세가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병이 나기 시작합니다. 누워있을 때도 손이 들어가면 장수한다고 했어요. 옛날부터 있는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 때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 제자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한 눈에 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저런 자세로 내려 올 수 있는 것은 진리를 터득한 사람 아니면 저런 모습이 안 된다며 그래서 찾아가서 ‘당신네들의 스승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 하니까 제자들이 이 정도라면 스승은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 소개해 줄 수 없느냐고 했습니다. 좋다고 해서 첫 번째 대면하자 두 말할 것도 없이 조복합니다. 
모양을 보고 육신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저런 자세가 나올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한 것입니다.

어째서 저렇게 되느냐 하고 감탄합니다. 

몸의 중심이 허립니다. 허리가 들어가야 됩니다. 근심 걱정 있으면 어깨 펴고 걱정할 수가 없어요. 당당하게 앉아서 어깨 펴고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어깨 펴고 있으면 망상하고 싶어도 망상 안 일어납니다.  

우선 자세를 먼저 바로 잡자는 겁니다. 

자세가 잘못된 점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해서 그런 사람이 걸어서 내려오는 모습이 아름답기가 말할 수 없어요. 이런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데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그 다음은 마음은 어떤 것이냐. 
마음이라는 것은 가장 가까운데 있는 것이 아니냐.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하면 찾기도 수월하고 보기도 수월할 게 아니냐. 도대체 무엇을 마음이라고 합니까. 여러분!

어떤 것이 마음이냐. 이걸 확인해야 되거든요. 마음을 본다, 마음을 깨닫는다 하는데 도대체 어떤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찾고 있느냐. 마음을 깨닫기 위해 화두를 들고 조사 공안을 들고 육신이 이렇게 왔다. 내가 찾고 있던 방법이 옳았다고 하면 석달 지냈어요. 벌써 마음을 깨달았어야 할 거고. 벌써 깨달았다면 그런 자세로서 일상생활을 당당하게 우리가 모습을 취해서 생활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마음은 어떤 것입니다. 마음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두고 일상생활에서 그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같은 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은 듣자마자 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고. 욕심을 내는 사람 저 소리 듣고 놀라고 저 소리를 듣고 화를 내고 결코 바로 되어있다고 볼 수 없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을 깨달아지질 않아 기진맥진하여 일체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자기가 ‘아휴! 공부고 뭐고’ 기진맥진하다가…… 그러다 갑자기 종소리 나자 깜짝 놀라 종소리 듣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뭐를 깨달았나. 마음을 깨달았다 하는데 어떤 것이 마음이냐.

소리 듣고 깨달았다. 무엇이 마음이냐. 듣고 있는 자신이 마음이다 이겁니다. 

동산 스님께서도 대밭을 지나가다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 듣고 깨달았다고 하는데 깨달은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해서 알았어라고 솔직히 일러줘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 깨달았다면 헤매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솔직히 얘기해주시오 하고 용감하게 한번 들어보라 이겁니다. 

그러면 깨달은 사람에게 어떤 납자가 뭘 연구해도 알 수 없어 선사를 찾아갔는데 ‘어찌 왔느냐’하니 ‘가르침을 주십시오’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알고 싶으냐’물으니‘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선사가 그대에게 일러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이미 알았고 솔직히 가르쳐주겠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아무리 솔직히 일러준다고 하더라도 그대가 내 말을 믿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먼 곳에 까지 찾아왔을 때는 설사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는 마음을 가지겠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단 일러 주십시오. 

그래서 일러줍니다. 뭘하고 일러주느냐 “그대가 바로 부처다.”

그런데 믿고 왔다고 했거든요. 

“예, 알았습니다.”이렇게 하면 성불하는 것인데 아직 깨닫지 못했으니“예!”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어찌하는 건가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의심하지 않겠습니다.”이렇게 대답하고서는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는데 선사는 이 말을 듣고 마음에 뭐 가지고 있는 것이 있구나 생각하고서 “금싸라기 아무리 좋다 해도 눈에 들면 눈병이다.”라고 일러줍니다. 납자는 거기서 깨달아버렸어요. 

마음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생각하는 것을 다 털어버려라. 

종소리 듣고 깨달았다. 무엇을 깨달았나. 종소리 듣고 ‘나’를 알았다 이 말입니다. 종소리 나자, 항상 죽비소리 듣고, 항상 생각 속에 그 소리를 듣고 음식 맛도 보고 냄새도 맡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기진맥진해서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을 때 종소리를 들을 때 어제도 듣던 종소리인데 온갖 생각 속에서 들었을 때의 종소리와 이 종소리. 깨닫기 전에도 종소리인줄 알았죠. 깨닫고 난 후에 안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두고 찾고 있었다 이 말입니다. 

지금 일체 마음에 가린 것이 없는 때 나와 똑같이 종소리 들으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한다. 지금 딱 돌아보니 바로 일러 주려하니 믿겠느냐,  안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의심하라. 의문하는데까지 의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아! 요것이구나. 바람소리 듣고 원래 없다.

모든 사량이 끊어진 자리에서 소리를 듣고 보니 두두물물 모든 물체마다 진리 아닌 것이 없고 도 아닌 것이 없고 일체소리가 무진법문 아닌 것이 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중생 본래성불이라고 깨닫기 전에도 이미 부처님이었다. 그것을 누가 믿느냐. 부처님께서도 그랬다지요.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믿겠느냐. 할 수 없이 진실한 말을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방편으로 설하다가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한 얘기는 방편이라고 했습니다. 

아까 육신이 앉아있는 것이 몸이라면 보고 듣고 아무런 생각하지 않아도 생각해서 아는 겁니까. 생각하지 않아도 종소리가 마음인줄 압니다. 마음이 바로 되었는지 잘못 되었는지  각자가 테스트해보면 된다 이겁니다. 벽을 보고 있을 때 눈 뜨자마자 산이 있으면 산이 보일거고 벽이 있으면 벽이 보일 것입니다. 안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딴 생각하고 졸고 있다면 안 보일 겁니다. 마음을 비우면 상대가 그대로 들어온다. 소리도 그대로 들어온다. 온갖 생각에 가려서 가까운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마음을 비우면 소리도 내 속에 들어오고 물질도 들어오고, 조용히 확인했다고 합시다. 산란심에 사로 잡히지 않고 혼침에 빠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으면 정이라고 하고 혼침에 빠지지 않으면 혜라고 합니다. 조용히 한 시간 동안 얼마만큼 지속될 수 있느냐. 졸고 있는 자신을 보면  혼침이 많고 산람심도 많구나 산란심도 고치고 혼란심도 고쳐야 될 게 아니냐. 이것 빼놓고 무슨 마음을 찾겠느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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