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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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아정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3.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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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찰도 아닌 어느 대중식당 입구에 위의 제목과 같이 붓글씨로 멋지게 써서 해석을 따로 붙여놓았다. 열렬한 불교집안인가 했는데, 전 주인이 걸어둔 것이란다. 그 토를 단 내용이 불교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쓴 것은 아닌가하고 의문이 들었다. 적당한 예일지 모르지만‘제자(弟子)’를‘동생의 아들’로 해석하느냐 아니면‘지식이나 덕을 갖춘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사람’으로 해석하느냐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성철 스님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일맥상통하는지도 모른다. 범부가 보는 산이나 물은,‘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관조(觀照=수행)의 단계를 거친 적정의 단계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산은 역시 산이요 물은 역시 물이다.’라는, 말은 같은 말로 보이나 그 내면에 포함돼 있는 뜻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상락아정’이란 글을 이해하려면 먼저 불교의 근본교의인‘삼법인’을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첫째 제행무상(諸行無常)-모든 것은 항상 그대로가 아니고 변한다는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이다. 미물의 생명에서부터 사람의 마음, 우주의 성주괴공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할 것이라고 집착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둘째로 일체개고(一切皆苦)- ‘이 세상은 괴로움이다’라는 부처님의 출가동기인 전제이다. 모든 게 괴로운 것이지만 또한 괴로움역시 제행무상에 의해 변할 것이기에 괴로움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셋째로 제법무아(諸法無我)- ‘무아(無我)’를‘내가 없다.’로 단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사실 글귀를 맞춘답시고 글자 수를 줄여버려 어려운 것이다. [‘나’라고 할 만한‘주체’가 없다.〕라고 해석해야 이해가 쉬어질 것이다. 그건 아무것도 없는‘공(空)’에 인연이 닿아서 이뤄진 것이기에 주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문제를 풀어보면‘정(淨)’이라는 뜻은 일반적으로‘깨끗하다’이지만 불교에서는‘열반적정의 단계, 즉 해탈, 열반의 경지를 말한다. 열반의 경지에서 보면, 무상에 집착하지 않으니‘상(常)’이 되고, 일체의 괴로움을 떠났으니 즐거움(樂)만 있고.‘무아’이지만 깨달으면‘아(我=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해탈한 경지는 깨끗한 경지(淨)이므로,〈항상 즐거운 것은 나의 깨끗함이니라,- 나의 몸과 마음이 깨끗하니(해탈하니) 언제나 즐겁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한마디로‘상락아정’은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부처’되려고 해야 한다. 부처된다는 게 거창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어쩌면, 자신이 항상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100%부처다. 그러니 부처냐 아니냐는 행복을 느끼고 사느냐 못 느끼고 사느냐의 기준일 것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어느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스승 왈‘마른 똥 막대기니라’. 그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스승 왈‘뜰 앞의 잣나무니라’

/안정훈(전 태고법륜불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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