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훌라를 가르친 경 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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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훌라를 가르친 경 ⑽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3.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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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으로의 초대

《니까야 : S18:22》

24.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우리의 마음은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게 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 넘어 평화롭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됩니까?”

25. “라훌라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거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라훌라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受]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想]이건 …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行]들이건 …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識]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거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라훌라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야 우리의 마음은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게 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 넘어 평화롭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된다.”

【해설】

부처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나’는 개념일 뿐이고 이를 해체하면 몸[色], 느낌[受], 생각[想], 심리현상[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가 실타래처럼 얽혀있을 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오온을 법(dhamma)이라 부릅니다. 자아나 인간이라는 개념적 존재를 뭉뚱그려 보지 않고 법들로 해체하면 이런 법들의 찰나성[無常]이 드러나고, 찰나를 봄으로써 제법(諸法)이 괴로움[苦]일 수밖에 없음에 사무치게 되고, 제법은 모두가 독자적으로 생길 수 없는 연기적(緣起的) 흐름[無我]이라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의 가르침은, 윤회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참나[眞我]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몸과 마음, 즉 오온(五蘊)은 어떤 절대자나 신(神)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이 연기법입니다.

세존께서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을 오온으로 해체해서 분석하신 이유는 “오온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것을 알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이 무아의 가르침에 사무치면 내가 존재한다는 사견(邪見)이나, 나’라는 존재를 어떤 식으로 남과 비교해서 평가하는 태도인 자만(自慢)이 점차 힘을 잃게 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알기 전에는 우리는 자신의 견해 안에서 모든 선택을 해왔습니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볼 때 가장 자신 있는 자세를 취하게 되듯, 매력 있는 특징은 강조하고 단점은 약화시켜 자신의 이미지-표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재가 아닌 내가 보기를 원하는 이미지를 보았을 뿐입니다.

연기적 관점에서 해체해서 내 안을 바라봅니다. 개념자기는 감각접촉에 조건 지워진 조건발생의 산물임을 알게 되면 세상살이에 염오하게 되고 탐욕은 조금씩 줄어들고 성냄의 기질은 잦아집니다.

불자들 스스로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자성(自性)이 공적(空寂)하여 본래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친다면 자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편안함과 안락함-평화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유현 김승석 엮음

 

※ 본회를 끝으로 ‘라훌라를 교계한 경’에 대한 해설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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