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바른 길을 스스로 실천하며 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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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바른 길을 스스로 실천하며 행해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3.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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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스님 사자후

이번 주 사자후는 광덕 스님의 강의하신 『보현행원품』에서 뽑아 실었다. 
광덕 스님은 사회의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선 개개인의 어둠을 밝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불자들 스스로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실천하는 것을 통해 대긍정으로 어둠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편집자 주>

 

우리는 서로 함께 어울려서 존재하는 것이며 결코 개아로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길에서는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으로써 번영의 피안에 통해지는 것이다. 하나의 원리 위에 하나의 이치를 함께 쓰고 함께 다스림을 받으며 함께 성공을 실현해 간다. 이것이 길이 아닌가. 이것이 만인이 추구하는 길의 원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에 어긋나는 사고방식이나 행위는 길이 아니다. 불행에 이르는 길이며 파멸에 이르는 길이며 사회나 역사를 욕되게 하는 길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물질주의적 이기주의다. 육체나 물질로써 자기를 삼음으로써 일체 이웃과 일체 자연과 진리와 대립한다. 그리고서 육체적 개아를 고집한다. 존재는 물질이며 가치는 물질이다 라는 논리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주의적 입장에서 이기주의적 행동과 팽창기술이 거기서 퍼져가는 것이다. 

이래서 바른 길을 역행하는 최대의 악덕은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 미망의 틈에서 싹트는 독버섯이다. 그래서 3천년 전에도 왕성히 솟아났고 역사를 흐르는 틈틈이 처처에서 미혹의 계절과 상황에 따라서 발호하였다. 그것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엄청나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기주의나 물질주의의 독버섯은 인간 존재와 번영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역행하는 것이므로 거기에서는 인간 불행과 파멸을 가져온다.

오늘날 세대는 팽대지는 물질주의 이기주의적 풍조 속에서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인간은 물질의 생산도구가 되었고 인간의 동물성을 성화하게 되었다. 그리고서 그 결과는 수많은 생령들이 압제와 공허 속에 신음하고 있다. 현대인의 불안과 공허 방황 황폐한 심성과 갈등 그 모두가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연유하고 있는 것을 본다. 따라서 불자가 일어서서 싸워야 할 것은 바로 인간 암흑을 조성하는 근원적 미혹과 그에 뿌리한 사상체계이다. 

이 점은 인간에 있어서 근원적인 것으로 미혹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바로 이에 대한 처방과 교화활동으로 이 땅 위에 불법의 교단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수순중생장’에서 말씀하신‘바른 길을 가리킨다’는 법문만큼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불자가‘바른 길’을 가리키는‘불법의 행동자’가 되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가리킨다’는 것은 알도록 길을 일러 주는 것이다. 그것은 말과 몸짓으로 길을 가리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불자는 모름지기 역사 속에서 진리의 조명자가 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적 향도자가 되어야 한다. 시대와 역사의 현실을 진리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이것은 진리이다’‘이것은 진리의 길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진리에 비추어 보아 그릇된 것을 고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자는 고발적 증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역사적 현실 위에 진리의 본분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진리의 태양이 소소히 밝고 역사적 현실이 그 햇빛 아래 뚜렷이 드러날 때 거기에는 말을 넘어선 증언과 고발과 격려와 처방이 함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불자는 이러한 진리의 조명자 이상의 행동자여야 한다.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바른 길을 스스로 실천하며 행해야 한다. 비진리에 대한 항거나 모순적 현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진리에 의한 긍정적 측면에 실천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긍정적 측면을 힘써 실천한다는 것은 비판이나 부정보다 몇 곱이나 차원을 달리하는 건설적 힘이 있으며 사회적 안정이 있는 것이다. 불자가 바른 길을 일러 준다 하여 긍정적이며 건설적 실천이 없이 한낱 비평과 부정과 항거에 그친다면 그것은 불자가 아니다. 역사적 현실을 담당한 주체적 책임자가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역사와 시대에 대해서 바른 길을 일러주는 불자는 진정 사회의 향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한국 불자들의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한편 긍지도 없지 않으나 부끄러움 또한 크다. 국가와 사회에 있어‘바른 길을 가리키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였는가? 사회의‘향도자’로서 얼마만한 실천이 있었던가? 또한 오늘날 이러한 책임을 수행할 불자와 교단내에 각오와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

거기에는 뜨거운 반성과 함께 새로운 각오와 앞으로의 다짐할 부분이 더 많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유감이다. 

보살은 ‘어두운 밤중’의 광명이다. 무엇이 ‘어두운 밤중’이란 말인가? 그것은 한낱 물질적 유형의 광명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어둠이요, 사회적 어둠이요, 세계적 어둠이다. 마음이 아니라 불성인 자성이다. 원래는 이 자성에 어둠이 있을리 없다. 불의가 있을리 없고 투쟁이 있을리 없다. 그렇지만 범부 중생들은 투쟁이 있고 불행이 있고 어둠이 있다. 그것은 미혹이 근원이다. 미혹이 근원이 되어 가지가지 생각과 행동과 견해가 쌓이게 되고 다시 그것이 누적되어 중생의 어둠, 사회적 어둠은 더욱 짙어가는 것이다. 육체를 지상 가치로 보고 이로움과 해로움을 분별해 그 속에서 사랑도 생기고 미움도 투쟁도 고통도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을 제거하자면 먼저 중생의 마음속의 어둠을 몰아내야 한다. 무지와 야욕에 사로잡힌 생각을 돌려 밝고 따뜻한 자성 공덕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마음을 밝게 쓰고 착하고 청정하고 넓고 활기있게 가져야 한다. 이해와 우정으로, 진리와 평화로, 희망과 용기로 그 마음에 가득해야 한다. 이로써 마음에는 밝음이 차 온다. 

사회적 어둠은 필경 마음의 어둠이 뿌리가 되는 것이므로 마음이 밝아질 때 사회적 구조적 어둠은 자취를 감춘다. 사회적 어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기주의와 물질주의다. 이것은 근본이 되어 반사회적 반도덕적 악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대립하고 파당을 모으고 음해 투쟁하며 사회적 혼란과 불안 침체를 불사한다. 경제적 부조리라든가 정치적 부조리라든가 사회적 범죄들은 모두가 이런데서 싹이 트고 성장하며 온 사회에 먹구름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불자는 모름지기 이러한 사회적 어둠을 소탕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러면 그 방법이 무엇일까? 다른것이 없다. 인간 생명의 존엄과 참 의미를 밝혀 주어야 하며 우애와 협동과 신뢰의 기풍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인간 신성, 인간 존엄의 가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실로 사회적 어둠의 제거는 중대한 문제다. 개인은 구조적 조직적 사회 속의 개인으로서 사회의 압도적인 힘 앞에 거의 자율성을 잃고 만다. 사회의 암흑에 깨어져 사회적 정의의 청정과 진실이 확보되지 않을 때 도도히 흐르는 사회악의 물결 속에서 개인이 홀로 등불을 지키고 청정을 지켜가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회는 하나의 힘의 조직으로서 개인 위에 군림한다. 이것이 생명을 밝게 돕는 기구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하고 무궤도한 야심과 미혹의 산물일 때 거기에는 중대한 위기가 있다. 불자는 개아 교정, 개인 구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이 아님을 착안해 비진리적인  사회의 장치로부터 중생을 옹호하고 인간 역사의 신성을 지켜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 제도는 인간 생명을 키우는 제도여야 하며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고 발전시키는 제도여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인간 생명의 존엄을 확보하고 발전시킬 제도일까? 이것은 현대 불자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임을 지적하는데 그치겠다. 사회적 어둠의 제거를 통해서 그대로 인간적 마음의 어둠이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이다. 사회는 인간에 있어 그것이 조건일 뿐 인간 자체는 아니다. 인간 자체가 능동적으로 밝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밝은 역사를 이룩하고 밝은 국토를 성취하고 밝은 인간을 이룩한다는 관건이 이 점에 있는 것을 유념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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