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찾는 순례길서 我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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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찾는 순례길서 我를 보다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7.03.31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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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흥암 최초, 제주불자들 극락전 ‘참선’

제주불교신문(대표이사 허운 스님)이‘진리를 찾는 순례길서 我를 보다’라는 주제로 주최한 성지순례가 지난 25~26일 일정으로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종립선원인 문경 봉암사와 영화‘길 위에서’배경이자 비구니 스님의 대표 선방 ‘백흥암’그리고 故 혜인 스님(은해사 조실)의 다비식이 봉행된 은해사에서의 템플스테이 그리고 오백나한 도량 거조암 등을 참배하며 제주불자들은 회향길에 ‘참된 나는 누구인가’를 돌이켜 본 시간이었다. <편집자 주>

 

청정한 마음 유지하는 수행자로 거듭나

영천 은해사 말사이자 비구니 스님들의 대표 선방인 ‘백흥암 극락전’서 참선을 마친 후 제주불자들이 백흥암 서기 청원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난 26일 새벽 4시 30분 은해사 템플스테이관. 새벽예불에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장대비가 오전 8시가 되자 사그라졌다. 영천 은해사에서 영화 ‘길 위에서’의 배경이자 비구니 스님들의 대표 선방인‘백흥암’으로 향하는 길. 은해사 연수국장 승원 스님의 안내로 제주불자들이 그 길에 나섰다.

야속하기만 했던 비가 그치자 그 길에 만난 저수지에는 둑길 넘어 피어나는 물안개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저수지 수면에 비친 그림자와 환상의 대비를 이뤄 원근감이 생생하다.

백흥암은 수천년 그 모습, 수행의 향기도 그 모습이지만 그 길에 향하는 봄과 가을은 또 다르다. 한없이 깊고 아늑한 길이다. 그 길에 만난 봄, 진달래와 산수유가 어제 맘껏 먹은 비에 고마움이라도 표현하듯 그 색은 더욱 진하다. 속세에 헝클어진 머릿속도 맑게 헹궈줄 것 같은 상쾌함에 온몸이 찌르르 울린다. 새벽까지도 비 날씨로 피곤했던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백흥암으로 향하다 중간에 멈춰 선 승원 스님. 백흥암은 찾고 싶다고 언제든 찾을 수 있고 보고 싶다고 언제든 볼 수 있는 그런 암자가 아니다.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들은 속세와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근 채 평소 수행에만 정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불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으신다. 굳게 닫힌 백흥암의 산문은 1년에 단 두 번, 부처님오신날과 우란분절(백중)에만 속세 사람들을 들여보내기 때문에 ‘묵언’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은해사 북서쪽으로 숲길을 따라 2.5km를 걸었다. 40여분의 시간동안 소나무, 굴참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자작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우리의 걸음조차 쉬엄쉬엄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길은 현세에서 피안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른다.  

비구니 선원 백흥암, 단청을 하지 않은 절집의 자태가 고색창연한 한옥의 기품을 한껏 풍긴다. 유구한 세월을 대변하듯 건물의 나무빛깔은 진회갈색으로, 알록달록 단청을 해놓은 절집보다 훨씬 세련된 풍모가 느껴진다. 단청을 하지 않고도 절집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곳이다. 그 분위기에 제주불자들의 몸가짐도, 언행도 조심스러워진다.

1년에 두 번 만 산문을 여는 백흥암이 제주불자들에게 극락전에서 참선을 허락했다. 순례자들에게는 최초였다. 이날 청원 스님은 불자가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설명한 후 20여분 동안 함께 제주불자들과 참선에 들었다.

백흥암이 유독 단아하고도 예스러운 기품을 유지할 수 이유는 뭘까.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 공간이고 보니 정갈한 느낌이 더하다. 그래서 본지는 그 기운을 제주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본지는 순례에 앞서 백흥암에 사전 공문을 발송하며 단청 없이 정갈한 ‘보화루’인 문루에서 참선 체험을 요청했었다. 제주불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특히 보화루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다. 한때 불교에 심취했던 추사가 맺어준 제주와 백흥암의 인연이다. 

그러나 백흥암 서기 직책을 맡고 있는 청원 스님은 제주불자들을 극락전으로 인도했다. 아직 보화루에서 참선을 하기란 너무 춥기 때문이다. 극락전에서 재가불자들이 참선을 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백흥암에선 이례적인 배려였다. 그 환희심 때문일까. 전날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에게 배운대로, 긴장을 풀고 호흡의 흐름 따라 자연스럽게 참선의 자세가 갖춰진다. 

청원 스님은 조선 최고 조각인 극락전 수미단에 대해 설명하기 보단 제주불자들이 백흥암 수행의 기풍을 품고 가길 바랐다. 이유인 즉 슨 이미 백흥암의 역사와 수미단의 아름다움은 인터넷을 통해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청원 스님은 “수행의 기운이 없는 곳은 단지 건물일 뿐 사찰이 아닙니다. 그렇듯 수행의 기운을 품은 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라 볼 수 있겠지요. 20분 동안 이곳에서 수행의 향기를 느끼며 ‘마음을 청정히 하는 수행자’로 태어나 보십시오.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자만이 열반에,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찾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겁니다. 자식을 잘 되게 하는 것보다 본연의 참 나를 찾는 것입니다. 불가의 도(道)란 하나씩 덜어내는 겁니다. 열심히 세상을 살아도 남는 것은‘무상(無相)’이듯 시비하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 남보다 잘되고 싶은 마음은 결국 허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청정한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으로 내가 행복할 때 내 가족, 이웃이 행복해지고, 그럼으로써 이 세상이 화엄이고 불국토입니다.”

스님의 말씀에 제주불자들은 어느새 마음까지 정갈해진다. 어느덧 몸은 참선의 자세를 뽑아낸다. 스님의 죽비 소리에 고요함이 제주불자들 마음 안에 자리 잡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소리도, 바람소리도 번뇌일 뿐, 적명 스님이 내려주신‘개에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화두를 둔다. 잠시라도 번뇌가 스치려면‘왜? 개에는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가’라는 의심덩어리를 다시 갖다 놓는다. 창틈을 뚫고 불어오는 찬바람도 그 기세를 꺾지 못했다. 그렇게 제주불자들은 제주에서 체험해 볼 수 없는 선방의 기운에 몰록 빠져들었다.

이번 순례에 동참했던 허성수 본지 초대 발행인은 “心淸淨 妄本空이라 無心第一 無心合道다”라고 이번 성지순례의 감명을 전했다.

<다음호에는 문경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이 설한 법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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