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문답의 긴 경 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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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의 긴 경 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4.2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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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으로의 초대 <377>

《맛지마 니까야 : M43》

9. [마하꼿티따] “도반이시여, 그러면 무엇으로 알아야 하는 법을 꿰뚫어 압니까?”
[사리뿟따] “도반이시여, 통찰지의 눈[慧眼]으로 알아야 하는 법을 꿰뚫어 압니다.”
10. [마하꼿티따] “도반이시여, 그러면 통찰지는 무엇을 목적으로 합니까?”
[사리뿟따] “도반이시여, 통찰지는 최상의 지혜를 목적으로 하고 통달지를 목적으로 하고 버림을 목적으로 합니다.”

 

【해설】

여기서 법(dhamma)이라 함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sacca)를 말합니다.

‘무엇으로’라 함은 수단이나 방편을 말하는데, 이는 통찰지(반야, paňňā)를 가진 눈, 즉 혜안을 의미합니다. 

아비담마에서는 통찰지와 지혜(ňāna)와 어리석음 없음(amoha)를 동의어로 쓰고 있습니다. 통찰지는 마치 등불처럼 미혹하지 않음으로 나타납니다. 통찰지의 가까운 원인은 삼매입니다.

“삼매를 잘 닦은 자는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통찰지는 유익한 마음(善心)과 결합된 위빠사나의 지혜를 말합니다.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ā)는 불교 수행을 대표하는 핵심적 술어입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그곳에서는 지(止)와 관(觀)으로 번역되어 어느 한쪽에 편중하지 않고 고르게 도 닦음을 하라는 뜻에서 지관겸수(止觀兼修)로 정착되었고, 중국 선종에서는 정혜쌍수(定慧雙手)로 계승되었습니다.

「영지의 일부 경」(AN2:3:10)에 이르길, 세존께서는 사마타를 마음과 마음의 해탈, 즉 삼매[定]과 연결 지으시고, 위빠사나를 통찰지[般若]와 통찰지를 통한 해탈, 즉 지혜[깨달음]와 연결 지어 설하셨습니다. 또한 삼매는 욕망을 극복하는 수행이고, 통찰지는 무명을 극복하는 수행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사마타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고정시키고 고요하게 하는 삼매를 개발하는 수행이고, 위빠사나는 조건에 의해 형성되어진 유위법(有爲法)을 명상하고 관찰하여 일체 존재의 공상(共相)인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를 통찰하는 수행이라고 세존께서는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사마타(禪定) 수행은 관념을 대상으로 하고, 그 대상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고요함을 얻고자 하는 일정한 바람이 있습니다. 위빠사나의 대상은 ‘지금 여기’의 몸(물질)과 마음(정신)이고, 분리 해체해서 알아차리고, 바람이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의 마음작용입니다.

통달지(pariňňā)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예컨대 물질은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느낌은 느껴진 특징을 가진다고 이와 같이 그 법들의 개별적 특징을 조사함으로써 생기는 통찰지를 ① 안 것의 통달지[知遍知]라 말합니다. 물질은 무상하고 느낌도 무상하다는 방법으로 그 법들의 보편적 특징을 제기한 뒤 생기는 위빠사나의 통찰지를 ② 조사의 통달지[審察遍知]라 말합니다. 물질이나 느낌은 무상이라고 관찰하면서 영원하다는 인식,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면서 행복이라는 인식, 무아라고 관찰하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순차적으로 관찰하는 위빠사나의 통찰지를 ③ 버림의 통달지[斷遍知]라 말합니다. 

삼매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如實知見]인데, 이를 약한 위빠사나라 하고, 여실지견의 목적은 윤회에 대한 염오(厭惡)인데, 이를 강한 위빠사나라 합니다. 나아가 염오의 목적은 탐욕의 빛바램[離慾]인데, 이를 도(maaga)의 흐름에 들었다고 말하고, 탐욕의 빛바램의 목적은 해탈인 것입니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의 지혜란 ② 조사의 통달지 단계에서 생긴다고 말합니다. 통달지를 관통하여 괴로움-고성제를 관통합니다. 버림의 통달지를 관통하여 일어남-집성제를 관통합니다. 팔정도를 관통하여 도성제를 관통합니다. 열반의 실현을 관통하여 멸성제를 관통합니다.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S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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