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선과 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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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선과 염불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5.0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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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청화사상연구회 제9차 학술 세미나 염불선과 제수행법 조명

이번 호에는 청화스님의 염불선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지난달 4월9일 청화사상연구회가 마련한 제9회 학술세미나 내용 가운데 중앙승가대 교수 법상 스님이 발표한 “염불선과 염불”의 일부를 실었다. <편집자 주>

 

불교는 이론과 실천으로 양분되고 이론은 반드시 바른 인식을 동반하여 실천적 검증이 요청된다. 그리고 실천의 양상도 매우 다종다양하여 어느 실천수행이 자기에게 적합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불교역사를 조망하면 각각의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탁월성과 더불어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여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단순한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서 공공성을 확보하여 대중의 이해를 바탕으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일체의 진리 중에서 가장 탁월함을 확보하기 위해 그 자체의 장점과 강점을 강력하게 주창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인도에서 불교와 외도의 경쟁 속에서 확립된 이론과 실천의 내용이 한중일 동북아 삼국으로 전해져서 약 6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서 경론의 번역과 더불어 그 연구의 성과로 격의불교를 거쳐서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학파와 종파불교를 발생시켰다. 그래서 불교의 제도권에서는 여전히 자파의 우월함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론적으로 심층적인 연구와 종파를 형성하였다. 그 결과로 중국에서의 불교는 한 때에 현실과 멀어진 귀족불교를 지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에 반하여 일부 민중의 안위와 두타 수행자들이 추구했던 불교는 어려운 이론보다는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실천과 실증에 바탕을 두고 안심입명하는 불교 본연의 목적에 부합한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본래면목의 체득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두타행을 수행하거나 대중적으로 단순한 염불수행을 제시하면서 생사를 초월하여 안심하고 입명하는 진여불성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진력하였다. 이러한 불교는 보리달마로부터 도신과 홍인과 혜능에 이른 일일전에 일인도하는 순선시대를 지나 마조도일과 석두희천에 이르러 조사선을 완성한다. 한편 염불에 관점을 둔 혜원과 담란, 도작, 선도의 대가들에 의해서 비록 일시적으로 정토종을 성립시켜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되었던 염불은 선사들의 배척과 융화를 반복하면서 동북아 불교에 주요한 수행방법으로 정립하였다. 

이는 당대와 오대, 송대, 원대, 명대, 청대를 거치면서 점차 선염융합과 선염쌍수, 선염일치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선염의 융합과 쌍수의 일치가 고대 한국에 전해져서 나말여초와 고려 조선을 거쳐서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 이론적인 회통불교의 성향아래 수행에서도 하나로 통합하는 경향을 발휘한다. 이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을 발휘한 금타화상은 『금강심론』에서 반야바라밀의 체득을 위해서 『반야심경』을 신해행증하는 체증과정을 피력하여 심오한 신증심오를 일인전 일인도로 표출하였다. 그러고 나서 「보리방편문」을 역설한다. 그내용의 첫머리를 보면 이렇다.

이의 보리란 깨달음의 뜻으로서 보리방편문은 「본성을 보아 도를 깨닫는 방편」이라. 정과 혜를 가지런히 지니며「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게 하는 불가사의한 비결」이니 익숙하도록 읽어서 뜻을 이해한 후 고요한 곳에 자리잡고 한 마디만 써서 단정히 앉아 바로 보이는 벽면에 붙여서 관찰하고 생각하되 한결같이 관찰하여「일상삼매로 본성」을 보고 한결같이 생각하여 「일행삼매로 도를 깨달」 을 지이다. 

간결한 어구로 선오후수(先悟後修)하는 불교수행의 과정과 목적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서 청화선사는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이하여 자세하게 설법하였따. 이에 대한 논증으로 『대지도론』에 언급된 내용을 간취하면 이렇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아비담에서 분별하여 설명한다. 처음에는 이와 같이 분별하지만 반야바라밀의 모든 법의 실상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다 일상이어서 이른바 무상이 되며, 부처님 마음에 들어가면 모두가 하나의 적멸상이 되는 것이다. 

구상과 십상에 대치하여 8수념을 논하면서 부처님은 대소승의 18불공법과 32대인상을 갖추었기 때문에 8수념을 염하도록 논하고서 구경의 반야바라밀의 의미에 대해서 논하였다. 또 계속해서 27권에서 32권까지 선정과 사무량심을 비롯해 구차제정과 37조도품 등 각종 수행과 대승의 육바라밀과 사섭법과 다라니와 삼매 등을 결합시키면서 논한다. 그 가운데 본론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보자.

〔經〕다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신속히 모든 다라니문과 모든 삼매문을 얻고,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되며, 나아가 아눗다라삼먁삼보디를 얻기까지 끝내 부처님 뵙는 일을 여의지 않느니라.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익히고 응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과 상응한다 하느니라. 〔論〕해석한다.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함은 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인 반야바라밀을 제외한 그 밖의 온갖 일들에는 모두 애착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을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끝내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다. 세상마다 「염불삼매」를 잘 닦기 때문이고, 보살의 마음을 잃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려는 서원」을 세우며 태어날 적마다 부처님의 세상에 있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만날 업연을 심어서 언제나 계속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아눗다라삼먁삼보디에 이르기까지 끝내 부처님 뵙는 것을 여의지 않게 된다. 

즉 반야바라밀은 18공을 체득하여 무분별지의 일체종지로 무상의 일상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의 실천으로 무상정등정각의 체득이라는 목적이다. 다음에 「보리방편문」의 법·보·화 삼신불을 함유한 아미타불을 체득하는 목적과 개념을 정리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은 허공과 같을 새 한 조각구름이나 한 점 그림자도 없이 크고 넓고 끝없는 허공 같은 마음세계를 관찰하면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생각하고, 이러한 허공 같은 마음세계에 해와 달을 초월한 금색 광명을 띤 한없이 맑은 물이 충만한 바다와 같은 성품바다를 관찰하면서 「원만보신 노사나불」을 생각하며,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형체없는 무색 중생과, 또는 사람과 축생 꿈틀거히는 유정 중생 등의 모든 중생들을 금빛 성품바다에 바람 없이 금빛 파도가 스스로 뛰노는 거품으로 관찰하면서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을 생각하고, 다시 저 한량없고 끝없이 맑은 마음 세계와 청정하고 충만한 성품바다와 물거품 같은 중생들을 공과 성품과 현상이 본래 다르지 않는 한결같다고 관찰하면서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이 원래 한 부처인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모든 현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 가지로 굴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청화선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바로 스승인 금타화상으로부터 유래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금타화상은 어디에 근거해서 영향을 받았는가? 이는 청화선사가 『실상염불선』을 설법한 내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청화선사는 달마로부터 혜능에 이르기까지 일인전에 일인도의 선을 순선시대라고 주창한다. 즉 달마에서 혜능까지 자성인 자기본성 곧 진여불성에 온전히 귀의하도록 간곡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역설하였기에 순선시대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육조단경』에 대해서 설법한 내용을 보면 위의 내용과 유사함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금타화상이 주창한 내용은 『육조단경』의 법신과 화신 보신의 설명에다 밀교의 상징적 의미를 첨가하여 아미타불의 의미를 해석하여 수행의 목적을 명시한 것이다.   

그래서 청화선사는 “특히 『단경』에서는 자성과 불성이란 표현을 돈황본에는 80여 번, 유통본인 덕이본과 종보본 등에는 100여 번이나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다. 혜능대사는 귀의삼신불을 설할 때 대중들에게 혜능 자신의 입을 따라 ‘청정법신불에 귀의하고 원만보신불에 귀의하고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합니다.’를 세 번씩 삼창을 되풀이 하도록 구하여 제각기 자기자성(自己自性)을 스스로 깨닫게 하리라는 열화와 같은 투철한 서원으로 대중으로 하여금 깊이 감득하고 분발하여 정진을 다짐케 하였다. 이렇듯 「자성불신앙」이 확립되면 필수적으로 자기본성을 깨닫는 수행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자성의 체득을 강조하여 불교 수행의 목적을 단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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