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법문
이곳까지 몇 걸음에 왔는가법정 스님 사자후

법정 스님 (1932~2010)

정유년 하안거를 맞아 어떻게 공부해 임해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주 사자후에서는 법정 스님의 법문을 실었다. 법정 스님은 조주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불자들이 한결같은 마음을 끌어내려 하셨다. 120세까지 사셨지만 40년 동안 스승을 모셨고, 작은 암자의 주지를 사셨다는 조주스님은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했기에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스님의 원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안거를 맞이해 다시 한 번 스님들의 청정한 삶을 되돌아보면 좋겠다. <편집자 주>

 

오늘은 여름안거 첫날입니다. 그래서 조주 스님의 일화를 음미해 보겠습니다. 불교 역사 가운데 이런 스님이 계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많은 선지식들이 계시지만 특히 조주 스님 같은 분은 청정 승가의 본보기입니다. 말로써 가르쳤을 뿐 아니라 스스로 행동으로 실천해 보였습니다. 

이분은 120해를 살았습니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말까지 장수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흔히 조주 고불趙州古佛, 즉 옛 부처님이라 부르곤 합니다. 

조주 스님은 어려서 출가를 했습니다. 절에서는 견습 승려일 때를 사미라고 부르는데, 사미 때 남전 스님을 친견하게 됩니다. 남전 스님은 당대의 이름 높은 큰스님이었습니다. 

이때 남전 스님은 몸이 고단해서 주지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한 사미승이 들어와 인사하는 것을 보자 스님은 대뜸“어디서 왔느냐?”하고 묻습니다. 승가에서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은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선문답입니다. 

그러자 사미승은“서상원에서 왔습니다.”하고 답합니다.‘서상원’은 절의 이름입니다. 상서로울‘서瑞’, 모양‘상相’입니다. 

“그래? 그럼 서상을 보았느냐?”

남전 스님이 묻습니다. 서상원에서 왔다고 하니 과연 서상, 즉 상서로운 상을 보았느냐는 물음입니다. 

이때 사미가 대답합니다. 

“서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신 부처님은 보았습니다.”

이에 남전 스님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보통 물건이 아니구나.’하며 내심 기뻐합니다. 

“넌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남전 스님이 묻습니다. 유주사미인가 무주사미인가? 정해진 스승이 있는가, 아직 정해진 스승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미가 대답합니다. 

“주인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냐?”

사미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을 향해 공손히 큰절을 올리고 나서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정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날이 매우 춥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미는 남전 스님을 자기 스승으로 여기고 예배드린 것입니다. 남전 스님도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서 특별히 보살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조주 스님은 어렸을 때부터 번쩍이는 선기禪機, 곧 선의 기틀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수많은 생 동안 수행을 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만나서 처음 주고받는 문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생애를 좌우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한 생애를 주고받습니다. 

한 청년이 금강산에 큰스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갑니다. 

큰스님이 묻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청년이 답합니다. 

“신계사에서 왔습니다.”

큰스님이 다시 묻습니다. 

“그럼 신계사에서 여기까지 몇 걸음에 왔는가?”

이 절에서 저 절까지 가면서 걸음을 세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몇 걸음에 왔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때 이 청년이 벌떡 일어나 큰 방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답합니다. 

“이렇게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큰스님 곁에 있던 한 스님이 “10년 정진한 수좌보다 낫군.’하고 칭찬합니다.

이것은 효봉 스님이 승려되기 전에 스승인 석두 스님을 찾아가서 처음으로 나눈 문답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 몇 걸음에 왔습니까?

원래 조주 스님의 이름은‘종심從心’입니다. ‘조주’라는 땅에서 오래 계셨기 때문에 조주 스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큰스님들인 임제, 덕산, 백장 등 그분들이 살았던 지명, 지역의 이름입니다. 덕산에서 오래 살면 ‘덕산 스님’, 백장산에서 오래 살면‘백장 스님’……이름과 법명은 따로 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다 보니 이름이 된 것입니다. 

조주 스님은 남전 스님의 제자가 되어 비구계를 받고 본격적으로 수행을 시작합니다. 어느 날 조주 스님이 스승에게 묻습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합니다. 

‘평상심이 도다.’

‘도’는 특별한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즉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조주 스님이 다시 묻습니다. 

‘평상심이 도라면 따로 수행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스승이 말합니다. 

“도를 마음 밖에서 찾으려고 하면 벌써 어긋난다.”

마음 안에 다 있기 때문에 도를 마음 밖에서 찾으면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조주 스님이 또다시 묻습니다. 

“하지만 도를 얻으려고 하면서 수도하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스승이 답합니다. 

“도는 알거나 모르는 데 있지 않다. 만약 무엇인가를 알겠다는 생각을 쉬고 참된 도를 도달한다면 그것은 마치 텅 빈 허공과 같아서 아무런 자취도 없다.”

조주 스님은 이 한 마디에 크게 깨닫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참으로 비범한 법의 그릇입니다. 이후부터 조주 스님은 스승인 남전을 40년 동안 모십니다.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도 40년 동안 스승을 모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120해를 산 그의 장수의 저력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스승 밑에서 10년, 아니 5년도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승려증만 받으면 다 제 갈 길을 갑니다. 저는 요새 기회도 없고 생각도 없고 해서 상좌를 들이지 않습니다.“상좌 하나에 지옥 하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상좌 때문에 애먹은 사람들이 많았던 듯합니다. 물론 좋은 상좌도 있습니다. 

불일암에 중 되겠다며 더러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저는 귀찮아서“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는가?”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다들 하겠다고 대답합니다.“그럼 3년 동안 행자 노릇 할 수 있는가?”하고 다시 묻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행자 노릇 오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가장 중요한 기간입니다. 일단 중이 되고 나면 오만해집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려고만 하지 정착하려는 간절한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저 3년만 채우는 것이 아니고 그 기간에 참고 견디면서 자기가 평생 받아 쓸 수 있는 수행의 기틀을 세워야 합니다. 처음 마음먹을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마침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조주 스님은 스승인 남전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이 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여기저기 운수 행각을 다닙니다. 물병 하나와 지팡이만 짚고서 운수납자가 되어 행각의 길에 나섭니다. 

이때 조주 스님은 안으로 이런 다짐을 합니다. 

“일곱 살 먹은 동자라도 나보다 나은 이에게서는 기꺼이 배우고, 백살된 노인일지라도 나에게 미치지 못한 이에게는 내가 가르침을 베풀리라.”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배우고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깨우침을 주겠다는 원을 세우고 행각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나이 여든에야 비로소 조주 동쪽에 있는 관음원이란 아주 조그마한 절의 주지를 하게 됩니다. 절은 작고 가난해서 겨우 끼니를 이어 갈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여위고 헐벗었지만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의 수행승이었습니다. 

중국 역사상 큰 법난, 즉 불교가 박해를 받은 일이 네 번 있었습니다. 이를 삼무일종의 난이라고 하는데, 그중 당 무종 때의 박해가 가장 심했습니다. 당시 조주 스님은 깊은 산에 숨어서 나무 열매와 풀뿌리로 연명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수행자의 자세는 잃지 않습니다. 

한번은 좌선할 때 앉는 신상의 다리 하나가 부러집니다. 그래서 타다 남은 장작개비를 새끼로 묶어서 사용합니다.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겠다고 해도 스님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40년 동안 가난한 관음원의 주지로 있으면서도 신도의 집에 편지 한 장 띄우는 일이 없었습니다.‘불사 하니까 오십시오. 무슨 행사 하니까 오십시오.’그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우고 얻어들을 때 우리 안에 수행자의 씨앗이 심어집니다. 

그래서 그를 옛 부처님, 조주 고불이라고 일컫습니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저작권자 © 제주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주불교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