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길 따라 이어진 산록도로에서 마음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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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길 따라 이어진 산록도로에서 마음을 내려놓다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7.06.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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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으로 가는 인욕의 길 ①

관음사를 거쳐 천왕사와 어리목, 윗세오름에서 오백나한이 있는 영실까지 이어진 인욕의 길은 한라산을 포함해 제주 섬 전체가 하나의 불국토임을 깨닫게 해주는 길이다. 이번 호에는 인욕의 길에서 만난 관음사와 산록도로에서 풍기는 인상을 담았다. <편집자 주>

 

부처님이 전해준 인욕바라밀을 새기는 길

 

산록도로를 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한라산과 오름들의 모습이 마음을 확 트이게 한다.

유월의 제주 관음사는 잘 정돈된 사찰의 품새를 마련해 전국의 불자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곧 문을 열게 될 사찰음식체험관은 세상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알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관음사 일주문을 지나 마주한 초전법륜상의 미소는 여전히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순례객들의 합장이 절로 이뤄지게 한다. 사천왕문을 지나 안봉려관 스님의 보살행을 오롯이 간직한 채 남아 있는 해월굴은 여전히 기도의 촛불들이 밝게 켜져 있어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100여 년 전 불교가 쇠퇴할 때로 쇠퇴해 힘을 잃고 있던 시기에 봉려관 스님은 제주불교의 선각자로 나서면서 섬 전역에 대대적인 불교 포교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봉려관 스님의 보살행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관음사는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제주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관음사에도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을 비춰주듯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는 세련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순례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테라스에는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 한 잔씩을 앞에 놓고 세상사를 풀어 놓는 등산객들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서 있는 반가운 은행나무 그늘은 유월의 햇살을 잠시 비껴가게 해주면서 잠깐의 휴식을 건넨다. 그 사이에 “건강발원, 소원성취발원……” 등 뭇중생들의 온갖 서원들이 담겨져 있는 기와에 새긴 글들이 또렷이 떠올라 순례객의 소원은 또 무엇일까 하고 되묻게 한다.

또한 관음사 경내에는 윤달을 맞아 생전예수재를 올리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이 이어지면서 더욱 활기차다.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미리 기도로 그 업을 소멸해야 하기 위해 올리는 생전예수재에는 살면서 만든 두터운 업장을 다소라도 녹여보려는 불자들의 마음이 간절하게 배어 있다. 

모든 것에서 그러하듯 나중에 열심히 하리라는 생각은 극히 실천가능성이 적어보이지만 그래도 이 몸이 건강한 지금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불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내일은 오늘보다 더 건강하고 힘이 있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몸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살아있는 지금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는 게 앞선 수행자들의 한결같은 당부이다. 

 

관음사를 나와 마주친 산록도로.

유월의 햇살이 밝게 비치는 날, 관음사를 나와 다시 산록도로를 달려보니 차장 밖으로 불어오는 산바람에 마음이 탁 트인다. 도로변으로 펼쳐진 목장과 오름들의 모습이 순례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여전히 한라산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지 않게 한다. 

인욕선인이란 말이 있다. 금강경에 나오는 말로, 거기에는 부처님이 과거 전생에 오백생을 인욕선인으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찢기고 하는 그 순간에도 부처님은 왕을 원망하는 마음을 조금도 내지 않았기에 인욕선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참지 못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순간순간 인욕선인이 되어 위기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목표한 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라산을 가는데 굽이굽이 산마루를 넘고 지나야 하는데 그것을 넘지 못하면 한라산이라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욕선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 인욕의 길에 나 있는 산록도로도 한라산 영실까지 가기 위한 인욕바라밀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조롭게 뻗어 있는 듯한 산록도로도 가다보면 변화무쌍한 것들과 만나게 된다. 하늘의 구름역시 방금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잠시잠깐 놓칠 수도 있는 그런 모습들을 살짝 보였다가 어느새 지워버리곤 한다. 그리고 산길을 따라 핀 이름 모를 들꽃들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토종 민들레가 노랗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산수국이 푸른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유월의 반짝거리는 날이다. 금강경에는 우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갖는 것은 햇볕이 밝게 비출 때 온갖 것을 다 볼 수 있는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듯이 유월의 햇볕이 어쩌면 이러한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듯 그토록 찬란하게 비추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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