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과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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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과 관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6.0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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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심은 무관심의 약어로서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끌리거나 흥미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불교적인 해석의 무심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마음이다. 번뇌 망념이 없고 분별심이 사라진 청정한 마음이며 최상의 수행을 통하여만 얻을 수 있는 텅 빈 마음을 뜻한다. 이는 깨달은 자의 마음이며 차별이 사라진 평상심이 곧, 무심이다.

중국 당나라 때 조주선사가 그의 스승인 남전보원 선사에게“무엇이 도(道)입니까?”하고 물었을 때,“평상심이 곧 도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중국 강서에서 남악의 종풍을 떨쳤던 마조도일 선승 역시“도를 알고자 한다면 인위적 조작이나 시비가 없는 평상심”을 유지하라 설파하셨다.

이래서일까? 불자의 입장에서 보면 69년 전 이 땅에 일어난 불교탄압사건이 무심이 경지에서 계속 머물러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도 진행형인 그 사건은 바로“4·3법난”이다.

해발 5km를 벗어난 35개 사찰이 방화로 초토화 되고 16명의 스님이 순교했지만 70년이 다 되도록 도(道)를 닦는 무심한 불교계는 입을 열지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다. 당시 불교를 지켜내기 위해 한 몸 던져 끝까지 불교를 사수하다가 순교하신 스님들께는 묵언으로 일관했으니 면목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지난주 불교신문은 이사 간담회 내용 중 4·3피해 사찰에 대한 연구보고와 함께 불교계의 나아갈 방향을 보도하는 한편 사설을 통해 6월 중에 4·3 당시 인명 및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하여 세미나를 개최하고 대책을 마련한다고 천명했다. 

불교계가 마침내 오랜 묵언수행을 마치고 입을 열었기에 때 늦은 감이 있지만 무척 다행한 일이다. 이제 4·3법난에 대하여 무심이 관심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기에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또한 순교비와 기념관 건립 등, 배·보상 차원에서 법난 해결의 대전환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4·3 당시 제주 사람을 빨갱이로 덧칠한 미군정과 국가권력은 정권 유지 차원에서 시국을 평정하는 미명아래 평화와 인권이 실종된 채 초토화 작전을 전개하여 당시 선량한 제주도민 10분의 1인 3만 명이 무모한 죽임을 당했던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무력진압 과정이 중심에는 한국기독교 총연합 소속인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제주에 급파하면서 악랄한 수법으로 불교를 탄압했던 법난에 맞불을 집혔던 사실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 23교구본사 관음사는 그 일대가 토벌대와 무장대의 교전장으로 법당 및 기타 건물 7동이 전소되고 2대주지 이신 오이화 스님께서는 모진 고문으로 열반하셨다.
4·3은 50년 동안 죄인의 누명을 쓰고 입을 틀어막고 지하에 묻혀 암흑 속에 가렸으나 민주화 열기와 더불어 어둠에서 빛으로 희미하게 소생하여 그 불빛이 화해와 상생으로 영글어 대광명의 밝은 빛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로 비춰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대선후보 시절 4·3평화공원을 참배하고 유족들과 간담회 석상에서 배·보상을 비롯한 완전한 해결을 약속하며 내년 70주년 추념식 참석을 공약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지난 5월31일 제주포럼 환영사 영상을 통해“69년 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제주에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수만 명의 선량한 주민들이 이념이 이름으로 무고하게 희생됐다”고 4·3을 정의하고“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국가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불교신문은 중단했던 4·3 당시 불교 피해사례를 지속적으로 연재해 불자들에게 알려주기를 요청 드리며, 내년 70주년에는 꼭 합동순교비가 건립되어 16명의 고귀한 스님들이 숭고하신 넋을 기리고 불자들이 함께 모여 추모하는 원년이 되길 서원한다.

/김성도 (포교사, 제주 4·3희생자유족회서귀포시지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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