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지옥인데 죽어서 극락 가겠어요?”
상태바
“내가 지금 지옥인데 죽어서 극락 가겠어요?”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6.21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불교의 주춧돌, 당신을 모십니다 <3> - 조명철 前 혜향문학회장 <시몽 스님과의 인연편> -

대학시절 법화사서 아이들 대상 한글 등 가르쳐
법화사 복원, 지방문화재를 복원 차원에서 접근

 

조 회장은 법화사 복원에 젊음을 바친 시몽 스님의 공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서귀포시 하원동 천년고찰 법화사는 조 회장에게‘마음의 고향’과 같은 사찰이다. 고향인 서귀포시 하원동에 자리잡은 연유도 있지만 원문상 스님(교사)을 인연으로 첫 불심이 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1950년 대 중반, 대학생시절 여름과 겨울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면 당시 법화사 주지인 장한택 스님께서 조 회장에게 야학 강습을 부탁했다.

“그때만 해도 여자들은 글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지요. 제 여자 조카도 학교를 못 가서 한글을 몰랐을 정도였으니까, 방학 때만 되면 스님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 그래서 법화사에서 아이들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주산도 가르쳤어요. 어느해 4월 초파일엔 마을의 학생들을 모아 절에서 연극도 공연했지요. ‘삼인의 도적’이란 연극,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해요. 이는 법화사가 마을로 피란을 왔을 때의 일이지요.”

조 회장이 제주도교육청 장학관으로 근무할 무렵, 부친이 돌아가시고 법화사에서 49재를 봉행하면서 새로 부임한 법화사 주지 시몽 스님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 시몽스님은 법화사가 천년고찰임을 인지하고 복원에 대한 큰 꿈을 꾼다. 그 이전의 스님들도 복원에 대한 꿈은 갖고 있었지만 그 꿈을 실현한 분은 시몽 스님이다. 그 원력에 최초로 힘을 보탠 이가 바로 조 회장이다. 지방문화재 복원에 제주도의 지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 회장과 스님은 김창진 제주도 기획실장(조회장의 제주대 1년 선배)을 찾아갔다. 복원 계획을 설명, 설득 끝에 우선 진입로 확장포장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법화사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복원의 대 역사가 시작된다.

“법화사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자 서귀포지역 유지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변성근 사장, 소암 현중화선생을 우선 만나 협의 끝에 정년퇴임 후 서귀포에 내려와 있는 김황수선생을 찾아갔는데 문화재 복원하는 의미에서 동참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초서의 대가 현중화 선생은‘법화사 복원에 도움이 된다면 내 팔이 끊어질 때까지 작품을 쓰겠다.’고 약속하셨지요. 결국 제주칼호텔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어 복원활동기금 조성에 성공했습니다.”

법화사복원추진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국가 지원과 신도들의 보시를 통해 18년간 7차에 걸친 발굴과 세미나를 열었다. 이에 부지는 2천 8백 평에서 2만 5천 평으로 확대되고 번듯한 대웅전, 남순당, 요사체, 구화루 등의 복원은 물론, 2천 5백 평의 연지를 복원, 조경까지 마무리함으로써 시몽스님의 꿈이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조 회장은 법화사 복원에 젊음을 바친 시몽 스님은 혜일선사의 환생일 것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관세음보살 등을 우리 마음속에 새기는게 중요
매일 저녁 금강경 독송하며 번뇌 망상 다스려

 

지난 1955년 낙성된 제주시 도남동 알관음사(현 보현사) 법당에서 당시 대학생 시절이었던 조명철 회장(사진 뒷줄 왼쪽).

“소암 현중화 선생도, 덕천 김황수 선생도, 청원 변성근 선생도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그분들이 이승을 다녀갈 수 있다면 아마도 법화사는 꼭 찾을 것입니다.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했는지를 보고 싶을 터이니 말입니다. 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창건으로 추정되는 법화사복원은 제주문화의 복원이지요. 그러니 법화사 복원은 제주인 모두의 큰 즐거움이었죠. 즉, 불법 속에서 즐거움을 얻어 행복을 누리게 하는 일이니 어찌 기쁨이 아니겠어요.” 

조 회장은 숨을 돌리고 다시 말을 잇는다.“무엇을 바라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보살행이 아니다. 남을 도왔다는 생각까지 잊어버렸을 때 진정한 보살행이 되는 법이다. 그게 바로 극락이다. 불자는 내가 평화로워 지려면 남을 평화롭게 해야 한다. 그런 정서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어야 참다운 불자다. 불교는 현세의 극락을 이루는 것이 최종 목표이고 부처님의 원이다.”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어간 조 회장, 그의 삶의 밑바탕에 불교의 연기설이 뿌리 깊게 내려 있었다.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상대가 즐거울 때 내도 즐겁다는 마음가짐이 바로 불자들이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조 회장은 70여 년 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불교에 대한 생각을 설파했다.

“불교는 무신론(無神論)입니다. 신에 의해서 좌우되는게 아니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아미타불을 신으로 모시는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새기는 것입니다. 극락세계가 서방정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극락이 돼야 합니다. 번뇌망상으로 내 마음이 지옥인데 어떻게 극락에 가겠습니까. 내 마음 속에 스스로 극락을 지어야 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을 일심으로 부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게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청소가 주변의 먼지와 더러움을 털고 닦는 것이라면, 수행은 마음의 때를 씻고 닦는 것이라고 조 회장은 생각한다. 그래서 매일 같이 집안을 청소하듯 금강경을 독송하며 마음속의 잡념을 제거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금강경을 독송하다보면 잡념이 들어온 것을 금세 알아차려요. 눈은 글을 보고, 생각은 딴 곳에 있는데, 그 마음은 과거에 가 있는 것이지요.‘마음이 과거에 가면 괴로움이요, 미래로 가면 불안이요, 현재에 머물면 행복이란 말이 있어요. 앞서 말한 현세극락이 바로 그것이지요. 내가 현재 극락에 살아야 죽어서도 극락에 가는 것이지, 지금이 지옥인데 죽어서 어찌 극락 가겠어요.”

부처님은 인생을‘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고해 뒤에 행복의 바다가 함께 있다고 말한다. 인생 80평생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양분 삼아,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에 괴로움의 바다를 극락의 바다로 만들어 온 ‘참 불자’의 삶을 몸소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조명철 회장님의 3회에 걸친 연재를 마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