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과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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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복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6.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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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덕스님의 마음법문

우리는 금생에 다행히도 전생에 지은 선업의 인연으로 사람의 몸을 어렵게 받았다. 만일 이 육신이 세월이 흘러 어느덧 몸을 벗을 시간이 내일로 다가온다면 그때는 어찌 하겠는가? 생자는 필멸이라.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짧은 생을 마감하고 비통하게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있다. 최고 명문대학까지 졸업하고 갑자기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히 명이 주어진 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늙음까지 천천히 그 길을 갈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의 몸을 받아 세상을 살아간다. 맨 몸으로 태어나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어느새 흙으로 되돌아간다. 남은 삶의 여생을 과연 어떻게 살다가 가느냐? 가장 큰 숙제이다. 그것은 바로 일대사인연을 해결하고‘견성성불’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겁생의 윤회 속에 수 없이 많은 몸을 바꾼다. 지금은 중생계에 살아가지만 전생에는 과연 어떠한 모습을 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업과 복을 지으며 살아왔는지 스스로 아는 사람은 없다. 다시 되돌려 놓을 수도 없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생하며 지나간 인고의 세월 속에 지은 복과 업과 자신의 전생의 모습들을 볼 수 없다. 그런데 가끔 살기가 힘들어질 때면 신세를 한탄하며 세상을 원망한다. 또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이기심과 탐욕으로 업을 짓게 된다. 인과를 바로 알게 된다면‘악업’을 지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업을 짓게 되면 그 과보는 언젠가 되돌아온다. 인과를 바로 모르기 때문에 또 다른 업을 낳게 된다.

복은 복을 낳고, 업은 업을 낳는다.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자라게 된다. 새싹이 어느덧 자라 올라와서 수확한다. 콩 씨가 바로 전생이다. 수확을 하는 것은 금생이다. 농부가 심은 그대로 거두는 이치가 불법이며 자연이다.  
우리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 그리고 업식들이 모여서 한 생명체로 태어난다. 그 세 가지 인연으로, 부모 형제 자식이 되어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업식의 작용은 피하려고 해도 자신이 지어놓은 악업과 선업은 피할 수가 없고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유일한 방법은 업식을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참회하여 다시‘무’로 돌리며‘공’으로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면 허공 속에 아무리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고 그림을 그려도 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모양과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그대로 텅 빈 자체이기 때문이다. 식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며‘무’와‘공’으로 되돌리면 된다.

‘업과 복’은 지은대로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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