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습니다. 부처님! 좋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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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부처님! 좋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6.2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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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신 빤딧쟈 스님 지상법문

이번 생에 선업 공덕을 쌓아서 과거의 업을 녹이고 현재 행복하기 위해서, 편안하기 위해서  
선업을 열심히 쌓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맞습니까.

법왕이신 부처님께 예경 올리겠습니다. 부처님 살아계실 때부터 썼던 예불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어 빨리어로 했습니다. …… 아라하또 나무 삼마 삼부다사 따사 바가와또 나모. 

뜻을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번뇌를 완전히 여의시어 온갖 공양과 예경 받으실만하며 사성제 진리를 비롯한 모든 법을 올바르게 스스로 깨달으신 그 존귀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께 예경 후에 이번엔 연민심을 내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고통받는 중생들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 처한 중생들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걱정 있는 중생들 모든 걱정근심에서 벗어나기를. 사두! 사두! 사두!

설법에 마음이 좋아하고 와 닿았을 때, 사두! 사두! 사두!라고 외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좋습니다. 부처님! 좋습니다.”우리가 선업 공덕을 지을 때 기쁠 때가 있어요. 직접한 것은 아니지만“대단하십니다!”칭찬하는 말, 박수치는 말, 수희심의 말이 바로 사두! 사두! 사두!입니다. 마음으로 동참해서 같이 기뻐해주는 공덕이 있는 말입니다. 

산방사에서 선업공덕을 쌓는 것은 전생에 했던 안 좋은 업들을 녹여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올바른 지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불선업이 무엇이냐 물으면 부처님은 ‘사와자’라고 하십니다.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죄가 있다는 뜻입니다. 나와 남을 해치고 있다, 죄가 있다, 잘못이 있다면 불선업이 되는 겁니다. 잘못이 없고 누구를 해치지 않으면 그건 불선업이 아닙니다. 

나 때문에 아프고 있다, 죄가 있다, 마음속에 욕심이 있다. 여기서 망가지고 있는 마음 자체가 죄입니다. 마음이 불편해서 괴로워요. 그러면 마음의 업, 불선업이 지금 마음속에 생기는 겁니다. 

불선업 되는 말, 성내서 하는 말, 행동도 욕심을 가진 행동, 자만과 오만 생각이 나와요. 그러면 죄가 마음속에서 나와요. 마음이 악하면 부처님은‘사와자’라고 하시면서 잘못이 있고 과보가 나타나면 고통이라고 하셨어요. 불선업은 ‘사와자’로 죄가 있고 잘못이 있고 과보가 나타나며 고통이다. 불선업에서 고통이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선업은 죄가 없고 잘못이 없고 누구를 해치지 않음이 선업입니다. 선업을 지으면 행복의 과보를 가지게 된다. 지금 행복하다고 하면 선업의 과보입니다. 죄가 없는 일, 남을 해치지 않는 일. 위험없기를,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편한하기를,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이렇게 열심히 선업할 때 뭐가 필요할까요. 선업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바로‘신심’입니다. 

신심이 없는 자는 선업을 못하는 자. 부처님은 신심이 없는 자는 손발이 없는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신심없는 자는 선업을 짓지 못해요. 좋은 일 하려면 신심이 없이는 못한다고 했어요. 

어떤 분들은 신을 좋아해요. 그런데 신들이 죽어가니 병문안 가서는 죽어서 좋은데 태어나세요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신들에게 좋은 데가 어디냐 부처님께 물어보니 바로 인간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왠지 아세요. 신들은 선업을 할 기회가 없어요. 

생계에 대한 고통이 없기에 너무 놀기 바빠서 선업 못해요. 먹고 살 걱정이 없어요. 복대로 살다가 복을 다 까먹으면 죽는데 죽으면서 다시 신으로 태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인간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해요. 

신들이 죽어가니까‘좋은데서 태어나세요’ 하고 나서‘좋은데서 좋은 것을 가지세요’이렇게 말했어요. 신들이 가지고 싶은 게 무엇입니까. 신들이 원하는 좋은 게 뭡니까. 바로 신심! 신심이 없는 자는 선업을 못짓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심이 있어서 여기 왔어요. 그래서 신심의 가치를 알아야 돼요. 신심이 있어서 선업을 할 수 있습니다. 

“얻기 힘들고 가지면 잃어버리지 마세요.” 

생기기는 어려운데 사라지기는 아주 쉬어요.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신심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부가 옷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부인은 낮에 가고 남편은 밤에 가서 법문을 듣기로 했어요. 남편이 부인 옷 입고 밤에 여섯시부터 법문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신심이 넘쳐나 보시하려는데 가진게 옷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때부터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신심 가지기가 어려운데 신심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그런데 새벽 두시에 그 전쟁에서 이겨‘지따메’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 하고 소리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때 코살라 왕이 내란이 일어난 줄 알고 마음이 놀랐어요. 

무엇을 이겼나하고 알아보았는데 가난한 사람이 마음 안에 일어났던 전쟁에 이겨 기뻐하는 소리였어요. 그 말을 듣고 좋은 옷 두 개를 주니 그 사람은 곧 부처님께 다시 보시를 올렸어요. 네 개, 여덟 개, 열여섯 개까지 주는데도 계속 다시 부처님께 보시를 올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문득 그 가난한 사람이 왕이 주는 것 마다 다 보시해버리니 왕이 좀 미워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신심이 있으니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그 가운데 두 개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하나는 다시 부처님이 법회하는 자리의 천장을 예쁘게 장식하는 걸로 쓰고 또하나는 집에 스님들이 오면 앉아있을 때 바로 위 천장을 장식하는 것으로 썼어요. 왕이 이걸 알고는 이 사람은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해서 마을 이장을 시켰어요.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네 개의 마을을 다스리는 이장이 된 겁니다. 선업의 공덕이 다음 생이 아니라 바로 이번 생에 나타났어요. 

부처님도 이 일을 알게 됐어요. 만약 가난한 사람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더 일찍 보시했더라면 16개 마을의 이장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마지막에 이겼기 때문에 좀 힘이 빠져서 네 개만 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법구경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선업은 죄가 없고 잘못이 없고 선업의 과보는 행복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어요. 선업을 무서워하지 말라, 선업을 무서워하지 마라, 선업을 무서워하는 것은 행복을 무서워하는 것이라고요. 선업을 무서워하는 것은 나는 좋은 것이 싫다 그 뜻입니다. 부처님은‘선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원하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했어요.

선업은 하기 싫고 좋은 것 갖고 싶고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선업을 찾아다니는 자는 행복을 찾아다니는 자입니다. 여러분도 5주째 열심히 선업공덕을 쌓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는 것은 보시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몸과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몸으로 좋은 것 하라는 것이 계율입니다. 입으로 나쁜 말하지 않는 것이 계율입니다. 

올바른 말 좋은 말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사찰입니다. 그래서 사찰은 교육기관입니다. 몸으로 좋은 행동하도록 하고 입으로 좋은 말 하도록 교육시키는 곳이 사찰입니다. 나쁜 행동 피하는 것, 나쁜 말 피하는 것이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정·혜로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정신차리게 하는 것입니다. 계는 몸과 입을 훈련시킵니다. 정은 마음을 훈련시켜 차분하게 하고 안정되게 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몸과 입과 마음이 안정되면 내 삶이 안정됩니다. 삶이 안정되면서 선업공덕을 열심히 지으면 지혜가 생깁니다. 지혜가 생기면 스스로 옳고 그름을 알게 됩니다.‘실라’계율은 몸과 마음을 지키고 ‘사마지’정은 마음을 지키고,‘빠니야’는 지혜로서 마음의 꽃이 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바로 지혜의 꽃입니다. 몸과 입과 마음이 안정되면서 삶이 안정되고 현재도 좋고 미래도 좋고 니르바나를 성취하길 바랍니다. 사두! 사두! 사두!

/정리=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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