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 석불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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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토함산 석불사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7.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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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43)

모두들 최고라고 말하는 석굴암 불상을 보기 위해 짬을 내서 경주에 간 대부분이 석굴암을 보고 아쉽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 이유는 불상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고 유리창 밖에서 봐야하기 때문이다. 불상이 있는 안으로 들어가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제석천과 범천, 문수, 보현보살과 십대제자 그리고 불상 뒤에 서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 윗부분에 만들어진 작은 감실에 놓인 여러 불, 보살상들도 봐야 제대로 된 석굴암 답사가 되는데, 유리창 건너로 보이는 인왕상과 사천왕, 본존 불상의 정면 모습만 보고 와야 한다. 주말이나 수학여행 기간이면 그마저도 사람들에 밀려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당연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저에게 그동안 답사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이나 유적지 셋만 꼽아보라고 묻는다면 다음 세 곳을 들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 말을 잊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던 곳이다.

먼저 영국국립박물관에 있는 고대 아시리아 왕궁의 벽면을 장식했던 사자 사냥 장면을 표현한 조각을 들 것이다.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화살이 다리를 관통하며 도망 못가는 사자의 절망에 찬 울부짖는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만들어진지 2500년이 더 된 돌조각이 전하는 생생함에 한참을 그 조각 앞에 머물었었다. 두 번째는 20여 년 전 2달 간 인도를 배낭여행할 때 봤던 중인도에 있는 엘로라 석굴의 16번째 굴인 카일라사 사원이다. 힌두교 사원으로 엄청나게 큰 돌산을 위, 아래에서 망치와 정으로 100년 가까이 조각하여 완성한 건물이다. 사원 건물에 있는 기둥, 창문, 벽에 표현된 조각, 외부 건물 모두가 한 덩어리의 돌을 파고들어가며 만든 것이다. 당시 인도인 평균 수명이 30여 세 남짓이었으니 할아버지대에서 만들기 시작하여 손주대에 와서 완성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원 위에서 사원 전체를 내려다보면 인간의 정신과 종교의 위대함에 말문이 막힌다. 세 번째 감동은 이전의 둘보다 더 컸다. 박물관 조사팀과 함께 석굴암 학술조사 때였다. 사진으로 많이 보아 외우다시피 한 조각들이었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본존 불상 뒤에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과 마주 대하는 순간 내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조차 잊고 황홀경에 빠져 마냥 바라보기만 했다. 아마 누군가 나를 보았으면 왜 실없이 웃느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나를 황홀에 빠지게 한 가장 큰 이유는 화강암이라는 거친 돌에 새긴 화려한 장식과 섬세한 표정 때문이었다.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 제자의 모습도 나름 인상적이고, 사천왕이나 문수, 보현보살도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하지만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에서는 분명 재질이 거친 화강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숨이 막힌다는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 바로 이 십일면관음보살상 앞이라 생각한다. 평면에 얕게 조각된 다른 상들과 달리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얼굴은 거의 조각상처럼 표면에서 도드라지게 만들어졌고, 신체도 상체 대부분은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생생함이 더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덜 입체적으로 만든 것은 아마도 아래서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유리창 밖에서는 볼 수 없다. 그것을 보겠다고 마음먹지 않은 채로 석굴암에 가면 창밖에서 석굴암 본존 불상의 위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석굴암 불상들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봤던 이로서 그것을 보지 못하는 석굴암 답사는 반쪽 답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일반인들에게는 초파일날 유리창 안에 들어가 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많아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보는 것만으로 모든 수고스러움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의미 있는 답사가 될 것이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아까부터 십일면관음보살상이라고 자꾸 하는데 그냥 관음보살이나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웬 십일면관음보살이냐고. 보살은 인도 북부 간다라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대승불교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이다. 깨달음을 얻을 능력이 충분하지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즉 중생들을 모두 교화시킨 뒤에 성불하겠다고 서원을 한 중생 구제를 실천하는 존재가 보살이다. 대승불교에는 수많은 보살이 등장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보살로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이 있다. 이 중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보살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svara)이며, 관세음 외에 관자재, 광세음, 관세자재 등으로 번역되며 줄여서 관음보살이라 불린다. 『묘법연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어려움에서 구제해주고, 관세음보살은 제도할 대상에 맞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해서 나타난다고 한다. 이처럼 변화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미술로 표현한 것이 바로 십일면관음보살과 천수천안관음보살이다. 

『십일면심주심경』에는 관음보살의 얼굴 외에 머리에 조각된 열한 개의 얼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면의 얼굴 셋은 자비상으로 중생들의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고, 왼쪽의 얼굴 셋은 분노상으로 악한 중생들을 구하려는 상, 오른쪽 셋은 흰 이를 드러내어 미소 짓는 모습으로 더욱 불도에 정진하기를 권장하는 것이고, 뒷면의 얼굴 하나는 크게 웃는 상으로 모든 중생을 포섭하는 의미, 정상의 얼굴 하나는 불법의 경지를 설하는 장면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석굴암에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도 이러한 경전에 의거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열한 개 중 두 개의 얼굴은 없어져서 복원한 얼굴로 대체되었다. 

내년이든 그 다음해든 평생에 한 번은 초파일에 석굴암에 가서 십일면관음보살상은 보자. 외국 가서 느끼는 즐거움보다 더한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송창식이 부른 〈토함산〉이란 노래 말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님의 얼굴에도
천 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

님들의 하신 양 가슴속에 사무쳐서 좋았어라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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