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비설신의가 청정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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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비설신의가 청정해지는 길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7.07.19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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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 성지순례길

인욕의 길 3
제주불교성지순례길 인욕의 길 세 번째 이야기는 충혼묘지를 지나 천왕사로 가는 길이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시원한 산그늘을 드리운 삼나무 숲길과 지금은 가는 것이 막혀있긴 하지만 선녀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은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런 곳에서 잠시 참선에라도 든다면 눈과 귀와 코를 비롯한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해질 것만 같다. <편집자 주>

 

산으로 둘러쌓인 천왕사 대웅전의 고즈넉한 전경

천왕사를 오르는 삼나무 숲길은 폭염에도 길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하늘로 뻗은 나무줄기가 무리지어 있는 이 숲에서는 무더위를 비껴가게 하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나무들이 호흡으로 산소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지나가는 바람까지 잡아두니, 이 나무들이 여름 무더위에 지친 세상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빚어낸 어두운 그림자를 떨치려면 나무를 보호하고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나무들이 설 자리를 자꾸만 빼앗아 가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치솟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명력이 없어진 삭막한 환경들로 이루어진 세상은 결국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근대화의 바람으로 곳곳이 아스팔트로 포장되는 와중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는 것은 우연치고는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다리로 건너 차안과 피안을 가르듯 한 절집 풍경처럼 여기서는 삼나무 숲길이 그를 대신해 순례객들을 피안으로 이끈다. 

자신을 울게 하기도 하고, 웃게 하기도 하는 이‘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여기까지 왔는가를 물어보는 잠시 동안의 사색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천상으로 이끄는 듯 한 계단의 끝자락에 서있는 삼성각

이 삼나무 숲길이 끝날 무렵 충혼묘지를 향하는 길 입구에는 석굴암으로 이어진 또 다른 길이 순례객을 맞는다. 붉은 소나무 숲길 따라 조심스레 오르다보면 마음을 쉴 수 있는 편안한 법당과 만나게 된다. 그 위로는 나무아미타불이란 마애명이 순례객의 신심을 북돋워준다. 

깨달음을 얻은 나한들을 모신 나한전

다시 발길을 돌려 천왕사 입구에 세워진 비룡스님 부도탑에 머리를 숙인다. 절을 세우고 기도와 수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만큼 대자대비한 마음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유난스런 폭염도 산그늘이 드리워진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하나 보다. 게다가 날마다 행하는 기도와 수행이 더우면 더운 것을 알아차리고 추우면 추운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를 일깨워주니 더욱이 허둥대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듯한 수행자 바위

양명한 기운이 법당을 감싸고 그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계곡엔 수행자가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깃든 수행자 바위가 보인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의단을 품은 듯한 얼굴! 백척간두진일보의 절실함이 묻어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있는 다른 바위도 곳곳에 형상을 품고 있으니 그저 타고난 장인, 자연이 빚은 만물이 다 제각각 나름대로의 모양새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숨은 장인이 있을 법한 그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선녀폭포가 나오고, 다시 그 길은 어리목까지 이어지고 있다는데 지금은 길이 막혀 그 진면목을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수행자 바위를 조금 오르면 예전에 선방이 있던 자리에 오백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보인다. 누군가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선뜻‘아라한이 되고자 한다’고 말하던 어느 신심있는 불자의 마음이 이곳에도 엿보인다. 여름을 잊고 잠시 그곳에 앉아 소슬바람 소리 들으며 바깥세상의 바탕에 끄달려 헉헉거렸던 안이비설신의를 청정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쉬지 못해 생기는 병이 마음병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기서는 그 병을 고칠 묘약이 있을 것만 같다. 

 

짙은 그늘이 드러워진 석굴암으로 가는 숲길은 순례객들의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처다.

다시 발길을 돌려 하늘 위를 쳐다보니 마치 천상에라도 이끌 듯이 삼성각을 오르는 계단이 총총히 놓여있다. 천천히 올라가보니 보살님이 천주를 돌리면서 산왕대신을 부르고 있다. 그 부르는 소리가 마치 노래를 하듯이 이어진다. 산왕대신 산왕대신 산왕대신…… 

삼신산의 하나로 꼽히는 한라산에 있는 산왕대신은 간절한 소원을 담아 기도를 하면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러기에 순례객의 마음도 거기다 소원 한 자락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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