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상태바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7.19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대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탄신 152주년 기념 - 제3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작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탄신 152주년 기념 제3회 신행수기 공모에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통해 인생의 아픔을 희망으로 전환해 가는 감동적인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호에는 우수작 구나연 불자의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를 싣는다. <편집자 주>

 

바람개비는 바람이 쎄게 불어야 잘 돌아가고, 종은 크게 때려야 소리가 크다. 내 인생 59년을 돌아보니 부처님의 가호가 없었더라면 과연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시련과 역경, 그리고 고난과 행복은 앞을 다퉈가며 나를 끌고 힘겨운 인생항로를 하고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고 가족들께는 누가 될까하여 조심스럽지만 숨길일도 아니고 죄짓는 일도 아니기에 이런 계기를 통해 불법인연의 소중함과 가족들께는 감사하는 마음도 전하고 싶다.

 창피한 일이지만 자살을 기도 했던 일, 교통사고 6번, 급성 맹장수술 중의 위기, 우물에 빠졌다가 살아남은 일, 감나무에서 떨어져 사경을 헤매던 일, 더 밝히고 싶지 않을 만큼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많았다.

이 같은 숱한 일을 겪으면서도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고, 불구가 아닌 건강한 몸을 유지 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사고가 잦은 나로서는 불행한 일이고 두려운 일이지만 묻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팔자가 쎄다거나 절에 다니는데 무슨 사고가 저리 많을까 라고 수근거릴 만하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나는 불교에 대한 믿음과 이해, 그리고 실천을 통한 깨달음이 더 깊어지고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일상 생활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마음의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으니 그 숱한 사고를 통해 얻은 경험을 자랑하고 싶어진다.

서른 아홉 살 되던 해의 일이다.

내 삶의 의지처였던 친정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건축업을 하다가 지인에게 많은 돈을 사기 당하자 살아가야 할 의욕을 잃었다. 파마약 병을 집어 들고 막 먹으려는데 그 날 따라 남편이 일찍 퇴근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자살이라는 것은 잠시 정신이 나가버린 찰나의 선택인 것 같다. 그 때 만큼은 사랑하는 자식이나 남편, 그리고 부모 형제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그렇게 불안하게 살아가던 중 설상가상으로 술 취한 뺑소니 차가 내 차 옆구리를 받아 갈비뼈가 골절 되어 2달 동안 등창이 날정도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가던 그때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원을 세웠다. 남들은 아파 죽겠다고 난리들이었을 때 나는 부처님께 애원하듯 매달렸다.“ 만약 여기서 살려 주신다면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생각하고 좋을 일 하면서 살겠습니다.”라고. 

‘인생은 어차피 한번은 죽을 목숨이니 몸을 아끼지 말고 일해라’라고 하신 아버님의 가르침이 나의 정신을 일깨웠던 것일까. 죽을지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이 같은 발원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놀라운 일이며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 때 부터 나는 좋을 일이 뭘까? 좋은 일이 뭘까? 를 고민하다가 어릴때부터 들어왔고 생각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배고픈 사람들 밥 주고, 목마른 사람들 물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빈지갑을 들고 시간만 나면 부처님을 모실 절 터를 보러 다녔다. 

그러나 교육공무원인 남편의 봉급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부모유산도 없는 경제력으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며 비웃음을 살 일이다. 그러나 어디서 힘이 생기는지 모르지만‘까짓것 하면 되지, 안 될게 뭐람, 될 때까지 하면 돼,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부처님 경전을 읽고 쓰기 시작했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도저히 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지만 불보살님의 명호만 불러도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무슨 걱정이랴. 이런 각오로 나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을 의심 없이 믿고 이해하며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풀어가며 치열하게 나와의 한판 승부를 걸기 시작 했다. 

 계를 지키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내가 다니는 원찰에서도 수계법회가 있었으나 동참하지 않았다. ‘불자라면 계를 받아 지키려고 노력해야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는 법두 스님과 성륜스님의 꾸짓음 덕분에 아픈 몸으로 복대를 두르고 일곱 여시간을 달려가 하동 쌍계사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 번쩍 들어다 주신 것 같은데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이런 기분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그때 받은 법명이  보광명(普光明)이다.

두 스님 덕분에 보살계를 받고 보광명이라는 불명까지 얻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엄마 얼굴도 모른 체 불쌍하게 자라면서 가장 의지했던 아버님의 별세 , 지인한테 당한 사기, 두 번의 교통사고, 이렇게 한꺼번에 큰일을 세 가지나 치러야 했던 서른 아홉살의 액운, 그때는 내 인생의 가장 비참했던 암흑기와도 같았다 그러나‘보광명’이라는 불명은 내 인생을 새롭게 이끌어나가라는 의미였을까‘보광명(普光明)’이라는 불명을 받고 나의 인생노트 한 페이지는 장엄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사기를 당했으니 자금 줄이 막혀 하던 일을 놓아야했다. 밤잠을 설치며 번민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집에서 살림만 하자니 지루하기도 하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큰 아들을 데리고 합천 해인사를 시작으로 강원도 봉정암까지 성지 순례를 계획하고 집을 나섰다. 꿈을 꾸고 찾아간 포항의 천곡사, 외부인은 출입금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니 행색을 보시고는 자리끼 까지 챙겨주신 불영사 원주스님, 곰팡이 냄새에 숨을 쉴 수 없는 지하방, 눈물 콧물 흘려가며 어떻게 이런 방에서 잠을 자라고 할까, 서러움에 밤새 촛불 켜 놓고 기도하다가 이런 방이라도 감사하자 고 생각을 바꾸고 밤을 꼬박 세우며 경을 읽은 절도 있었다. 아들은 1주일 만에 포기했고  나는 강원도 봉정암을 마지막 순례지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봉정암을 향해 가던 중에 돌발 사고로 손등과 종아리가 찢어지는 사고나 났다. 아~! 이것이 기도장애로구나. 이런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오히려 힘이 났다. 쏟아지는 피를 손주건으로 감고, 약을 먹고 퉁퉁 부은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마지막 안간힘을 썼다. 나는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을 때마다 혼자하는 말이 있다.‘이것이 마지막 일거야’ 하늘은 나의 편이잖아. 죽기도 하는데 이런일 쯤이야! 부처님 말씀과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믿습니다. 중얼중얼 거리며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귀인을 만나 안내를 받으며 일곱시간에 걸쳐 깔딱 고개를 마지막으로 봉정암에 도착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마지막 순례지 봉정암, 부처님의 6년 고행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의 15일 순례는 너무나 눈물겨운 행로였다. 

나의 기도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주어진 환경 탓하지 않고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내 앞에 닥친 일들은 망서림 없이 꾸준히 해내는 실천주의다.  마음이 일어나면 곧 바로 실천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부정적 뒷말이 있다.‘잘난 체 한다, 말만 앞 세운다,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쎄다, ‘인정하지 않는다’그리고‘말이 많다’는 말들이였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난 멈춤 없는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상불경보살품을 읽고 쓴  덕분이며, 보현행원품과 관음예문을 예경하는 덕분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수도 없이 경험한 나로서는 죽음이 두렵거나, 남의 말이 두려운게 아니다. 그들의 말은 3일가면 오래간다.  내 몸과 마음을 떠나 되는 일이 어디 있다고 .나와의 약속과 부처님께 애원했던 약속을 그들이 지켜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20년 만인 쉬흔 아홉 늦은 나이에 대복사-보광선원에 깃발을 꼽지 않았던가.

너무 흔해서 귀함을 모르는 글과 말들. 부처님 말씀 또한 우러러 받들고자 한다면 내 등 뒤에 대고 부정적인 언어로 나의 기도를 훼방 놓을 리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인연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불교에 대한 신심도 깊어 졌으니‘무엇이 좋다 나쁘다’라고 감히 논하겠는가.

나의 기도 욕심으로 인해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나와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라면 가족들의 헌신과 도움이 따라야 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난은 대물림을 한다지 않은가, 가난 때문에 대학도 못가고,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해서, 주눅 들어 살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나의 이런 기도발원은 욕을 먹고, 억울한 소리를 듣는다 손치더라도 기어코 해내야만 한다. 

농사를 짓는 농군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남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내하고, 견디며, 기다리는 3박자 장단에 맞출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하고 공부하는 마음자세 뿐이리라

오늘도 합장한 손 끝에 떠오르는 생각, 눈을 뜨자마자 파고드는 생각, 멀리 아주 멀리  천리를 보내고 만리를 보내도 떠오르는 생각, 살며시 감은 두 눈 속에서도 아른거리는 생각 그 생각들, 신구의(身口意)삼업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실천해 간다.

아무리 급해도 젖은 옷을  입을 수 없고,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 매어 못쓴다 .

때가 되야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안다면, 오늘 내가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와 해야 할 일들을 묻고 실천해야 한다. 오늘도 내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챙겨가며 끊임없이 달려드는 번뇌 망상을 벗기 위해, 어렵게 마련한 대복사-보광선원에서 자비도량참법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나 혼자가 아닌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마음은 행복하기만 하다, 아~ 이제부터는 내가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와 해야 할 일들을 붓다 세존님께 묻고 싶다. 

/글 : 구나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