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넘어서는 길은‘자정기의’(自淨其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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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넘어서는 길은‘자정기의’(自淨其意)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7.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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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후 스님 지상법문

선운정사(주지 현오 스님)는 지난 14일부터 16일 3일간 가지면서 생전예수시왕생칠재 회향법회를 전통불교의식으로 치르면서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법문 시간을 마련해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14일에는 양양 낙산사 주지로 있는 도후 스님을 초청해 법문 자리를 마련했다. 도후 스님은 “좋고 나쁨이 교차되는 것이 인생”이라면서 “악한 일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수행을 통해 마음을 맑게 해나갈 때 육도윤회하는 인생에서 벗어나는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부처님이 세상을 보시기에는 육도라. 천상도 있고 저 지옥세계도 있고 인간세계도 있고 아수라, 축생의 세계도 있는데 그 세계는 늘 고통이 따르니까 열반의 세계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고 절에 다니는 것은 결국엔 그 자리에 가보자고 하는 겁니다.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났는데 또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천상은 좋고 지옥은 힘들고 아귀 아수라 축생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반은 즐거운데 반은 괴로운 것이 인간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비유한 대목이 나옵니다. 어떤 장자가 차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주인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누구시오.’ 하니 ‘나는 공덕천이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행복을 안겨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얼굴도 예쁘고 행복을 나눠주는 사람이니 얼마나 반가워, 주인이 차를 한 잔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기척이 나서 대문을 보니까 험상궂게 생긴 여자가 서있는 겁니다. 

“누구시오?”하고 물으니“나는 흑암천이요.”이렇게 대답을 하는 겁니다. 

“뭐하는 사람인데…”하고 소리를 지르니 그 여자는 불행을 안겨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당장 가라고 소리를 지르니 그 여자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지금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이 내 친언니요. 우리는 숙명적으로 늘 함께 다녀야만 됩니다.”

이 이야기가 뭡니까. 인생이라는 게 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을 비유한 얘기입니다. 

인간만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 세 씨 성을 가진 노인이 있었어요. 그 노인에게 말이 한 마리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말을 잃어버렸단 말입니다.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 잃어버린 말이 돌아왔어요. 그것도 다른 말 하나를 더 데리고 왔단 말입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놀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다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거라. 그렇게 마음에 근심이 생겼는데 나라에 난리가 나면서 아들만한 젊은이들이 다 전쟁터로 간단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결국 전쟁터에 나가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좋고 나쁜 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좋은 일과 나쁜 일 반복되는 것이 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고 본 거요. 그런데 부처님이 깨닫고 보니 그런 신이 없고, 신은 존재하지만 그런 권능을 가진 것이 아니다 라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신이 있어서 우리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결과물이다. 오늘 이 정도 사는 것이 누구 탓할 일이 아니라 자기행위의 결과다 이렇게 알았단 말입니다. 

누구나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데, 보통사람들은 조금 나쁜 일이 있으면 남 탓하고조상 탓하고 이러는데 부처님은 자기 탓이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오늘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내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창조주는‘나’다. 누구 탓할 일이 아니다 이겁니다. 중국 당나라에서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백거이가 과거에 급제해서 목사로 부임해서 거기 있는 절에 인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사도 인사지만 그 스님이 얼마만큼 불교를 잘 아는지 테스트해보려고 간면도 있어요.  

가서는“불교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불교가 뭐냐 이러면 대답하기 참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도림 선사라고도 하고 별명은 조과 선사예요. 나무 위에 집을 지어놓고 사는 괴짜 스님인데 그 대답으로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題佛敎), 모든 악한 일을 짓지 말고 선한일을 받들어 행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대답하자, 백거이는 맞기는 맞는데 그건 세 살 아이도 아는 소리가 아니냐고 반문한단 말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세 살 아이도 다 아는 소리지만 여든 살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 아닙니까.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알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보다 나은 조건, 좋은 일 하라는 것은 인과여. 늘 방생 많이 하고 아픈 사람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면 건강해지고 오래 살고 그건 인과입니다. 세속에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건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은 아닙니다.

육도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자정기의’에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하라는 얘긴데 늘 참회를 하고 기도를 해라 이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절에 자주 다니면서 지나간 것을 반성해라. 마음이 순일해지도록 깨끗해지도록 노력해라. 

관세음보살 열심히 부른다든지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른다든지 이렇게 열심히 하면 그 공덕이 쌓여서 극락세계 가는 겁니다. 그러면 육도윤회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과거칠불, 모든 부처님이 다시 출현하셔도 이 범주 안에 있다 그 소리입니다. 

세속에서 좀 건강하고 복되게 살려면 선행을 많이 하고 악행을 적게 하고 자주 틈나면 참회기도 많이 하시고 종국에는 열반의 세상에 갈 수 있다는 것이 그 도림선사의 얘깁니다. 모든 부처님이 다시 오셔도 이 말씀밖에 하실 말씀이 없습니다. 

금생에 이렇게 대접받고 좋은 직책을 가진 것을 보면서 나를 점검해 봤어요. 

찾아보니까. 그랬더니 낙산사 홍련암에서 100일 기도 한 것이 기억납니다. 

장래 희망 쓰는데다 장래 큰스님이 되겠다고 썼는데, 역사책에서 서산대사나 사명대사 보면서 공명심이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 때 결핵이라는 병에 걸려 절에 가서 살면 건강해진다고 해서 절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불교공부 하다 보니 제대해서도 불교공부 좀 더 해가지고 가야겠다고 해서 다시 들어왔는데 그 길로 출가가 된 겁니다. 그런데 그 결심한데 비하면 너무 건강도 안 좋고 부처님 믿는 신심이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가 좀 안 믿는 버릇이 있어요. 부처님 말씀도 확 믿는 마음이 강해야 수행도 잘하고 자기 발전이 있는데 그러질 못하니, 건강하게 해달라 하고 신심있게 해달라는 발원을 세워서 100일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그 백일기도가 한 번 들어가면 두 시간씩 하루 네 번 8시간해야 돼요. 집중이 잘되면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데 집중이 안 되면 5분도 채 안 지났어. 옆에 신도가 쳐다보고 있으니 꽤도 못 피고 죽을 지경이라. 그런데 기를 쓰고 악을 쓰고 하다보면 신이 날 때가 있어요. 기도가 잘 될 때가 있어요. 그렇게 거의 다 끝났는데 한 보름 남겨놓고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해 양양에 있는 병원에 가보니 급성 맹장이라 수술 받아야 한다는 거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기도 회향 못하는 게 너무 아깝기도 하고 부처님이 야속하기도 하고, 신심있게 해달고 기도했는데 혼란스러워. 그런데 혹시 오진인지 모른다고 큰 병원에 갔더니 거기서도 마찬가지라.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다시 기도를 했어요. 부처님 제가 기도 끝날 때까지만 고통만 멈춰주면 기도 마치고 수술받겠습니다. 

의사한테 그렇게 말했더니 왜 무리한 기도를 하려 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했지요. 기도하다 죽으면 극락 갈 거고 또 태어나면 신심있는 인간이 될 거고. 그렇게 해서 기도를 마쳤는데 그때는 기도만 끝나면 바로 수술하겠다고 했는데 한 20년이 가버렸어요. 

그 후 신흥사 주지로 갔는데 기도 할 때 봤던 신도를 만났는데 그 신도 보니까 맹장이 생각나서 약속 지키기 위해 맹장 수술을 해야 되는 거야 말아야 되는 거야 하고 웃은 일이 있습니다. 
독한 사람 만나면 병도 도망가는지.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치료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기도할 때 힘들고 어려움이 있으면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지치고 힘들다 하면 쉽게 포기하는데 이렇게 어려워도 죽음도 불사하는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 밀어붙이면 어려울 게 뭐 있겠는가 그 말입니다. 세상에 두려운 게 뭐 있겠는가. 오늘날까지 자랑하자면 내 일생 한 번 찾아보니까 그때 순수한 마음으로 열정을 가지고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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