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남편의 불교대학 입학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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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남편의 불교대학 입학을 기대하면서
  • 권세정<제주법화불교대학 13기>
  • 승인 2017.07.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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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제주법화불교대학에서 봉정암 성지순례를 간다는 문자 한통을 받았다.

지인들과 이미 두 차례 다녀왔고, 그래도 세 번은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친한 언니랑 신청했다.

그날 남편과 저녁밥을 먹으며 갑자기 남편 혼자 2박3일을, 그것도 주말에 홀로 지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 남편에게 “봉정암 성지순례 같이 갈래요?”라고 물으니 좀 머뭇거리더니 “그래, 가지 뭐”라고 한다. “그럼 2박3일 동안 담배 못 피우는데 괜찮아?”라고 물으니 참을 수 있다는 그 말에 남편이 기특하게 까지 보인다.

속으로는 남편이 ‘이번 참에 부처님을 뵙고 담배 끊기를 다짐하길 기원했다.’

아무튼 출발일 만 기다리며 간간히 한라산 워밍업도 하고, 노꼬메 오름도 올라가며 체력을 만들었다.

드디어 출발일인 7월 15일 만반의 준비는 다됐지만 날씨가 비 예보였다. 제발 큰비만이 아니길 바랐다. 성우스님께 특별 또 특별 기도부탁 드리며 제주공항을 떠났다.

다행히 강원도는 흐림이었다. 다른 보살님들과 처사님들도 조금은 안심하는 듯했다. 성우스님께서 부처님께 올린 정성스런 기도 덕분 때문이었으리라.

백담사에 도착하니 비는 안 오고 선선했다. 산행하기는 딱 좋은 날씨였다. 우선 영시암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같이 간 남편은 생각보다 잘 걷는다. 영시암에서 삼배만 하고 다시 오세암을 향했다. 구비구비 고개길을 넘고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에 점점 자연 깊 숙이 들어갔다. 우리 일행들은 오세암을 80m 남겨둔 깔닥고개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빗줄기는 시원하게 우리의 마음까지 씻겨주며 힘든 산행을 덜어줬다.

어린 동자승의 전설이 깃든 오세암도 5년 만에 오니 많이 변했다. 계곡도 좀 마른 듯 흐르는 물소리도 안났다. 곧 바로 저녁 공양시간이다. 줄을 길게 서는데 그 유명한 미역국밥이다.

힘든 산행 뒤에 먹는 밥이라 너무 꿀맛이다. 남편은 입에 맞은 듯 한그릇 더 먹을 기세다. 한그릇을 금세 비워낸다. 저녁에 남편이랑 법회에 참석했다. 기도에 처음 접하는 남편은 생소한지 두리번거린다. 그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고, 귀엽기까지 하다.

기도 스님은 “기도는 첨부터 끝까지 한가지 원력만 세우라”고 하신다. 스님의 말씀을 고이 새겨 기도하는데 온갖 망상들로 채워졌다. 당연히 기도발은 먹히지 않았다. 다음날, 일찍 공양을 끝내고 봉정암을 향했다. 다시 산행의 시작이다. 어제보다 더 힘든 산행이다. 저절로 부처님을 찾게 됐다. 봉정암에 도착해서 방을 지정받고, 잠시 쉬었다가 설악산 대청봉을 바라봤다. 안개가 자욱하다. 앞을 가려서 멋진 풍광을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오늘은 봉정암 저녁 법회 이후 10시에 사리탑서 천수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 21독송을 하기로 했다. 봉정암에 새로 대웅전이 세워졌다. 전보다 더 웅장했다. 법당 안에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리탑이 보였다. 전에는 유리창이 작아서 앞에 있는 분만 보였다. 참 대단한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같은 장엄함과 여법함에 남편도 속으로 ‘같이 오자고 한 나에게 고맙다는 생각하겠지!’라는 생각만으로도 흐뭇했다. 그동안 봉정암서 새벽예불을 잘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하리라 생각에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에 참석했다. 맑은 공기에 정신도 맑아 졌다. 자연스럽게 기도는 집중됐고, 시간가는 줄 몰랐다. 기도에 집중하다보니 우리 일행에 비해 걸음이 뒤떨어진 것 같다. 아침공양도 생략한 채 다시 하산을 했다. 수렴동 계곡의 폭포소리에 발맞춰 백담사에 도착했다. 하얀 조약돌이 햇살따라 눈부시게 만든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며 2박3일 동안 수고한 발에게 감사의 말을 건넨다.

“덕분에 무사히 갔다 왔다. 고맙다. 수고했다.”고 말이다. 함께 동참한 법우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모두들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 오금숙 사무장님의 마지막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돌아오는 7월 17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 학기엔 남편도 불교대학 입학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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