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미소의 나라 태국을 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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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미소의 나라 태국을 가다<4>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7.07.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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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역사 속에 멈춰버린 불교사원 ‘아유타야’

아유타야, 불교세가 번성했던 과거 왕조와

전쟁상흔이 남긴 흔적들, 훌륭한 관광자원

한국의 천년고도 ‘경주’,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미얀마의 ‘바간’ 그리고 태국의 ‘아유타야’의 공통점은 목 잘린 불상, 머리만 나뒹구는 무너져버린 사원과 불탑 등 가장 불교세가 번성했던 과거 왕조와 전쟁의 상흔이 남긴 흔적들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된 곳이다.

태국의 ‘아유타야’는 태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아유타야 왕조’가 무려 400여 년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멈춰버린 역사의 현장이다. 아유타야에는 번영했던 역사를 방증하듯 사원이 1,000여개 이상이나 된다.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태국 중부지역에 있는 도시로 도시전체가 문화유산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4세기 중엽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 태국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였다.

한 포르투갈 모험가는 아유타야를 세계 무역의 중심지라고 표현하였으며 기록에 따르면 400여개의 사원과 55km의 포장도로, 19개의 성곽을 가진 매우 번성한 도시였다. 아유타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주요 도시 중 하나였던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당시 버마(현재 미얀마)와의 잦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유적들이 파괴되었고, 1767년에는 미얀마의 대공세로 인해 결국 찬란했던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하게 되었다.

불살생을 강조하는 불교국가가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는 불교국가라는 이미지만 덧칠됐을 뿐 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종교를 적절하게 활용했던 미얀마 왕권의 술수였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교국가가 아니었던 셈이다.

아무튼 많은 세월이 흐른 후 태국 정부는 아유타야의 이 쓰라린 흔적 역시 지울 수 없는 태국의 중요한 역사로 인정하며, 완벽한 복구 보다는 과거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보존하여 역사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여 1991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왓 야이 차이몽콘(Wat Yai Chaimonkhon)’

제주불자들이 아유타야 왕조의 첫 상흔을 찾은 사원은 ‘왓 야이 차이몽콘(Wat Yai Chaimonkhon)’이다. 1357년 우텅 왕이 스리랑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들의 명상을 위해 세운 사원이다.

사원에는 거대한 와불이 있는 비하라 유적, 좌불이 있는 비하라 유적, 셀 수 없이 많은 좌불이 있는 갤러리, 체디라고 하는 대규모 주 불탑 등이 있다. 주 불탑인 프라 체디 차이몽콘(Phra Chedi Chaimongkhon)은 나레수언 왕이 1592년 미얀마와 싸울 때 코끼리를 타고 맨손으로 미얀마의 왕자를 죽여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사원은 ‘승리의 대사원’이라 한다.

이 주 불탑의 높이는 72m로 아유타야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이 불탑을 오르는 계단은 방문객이 하도 많아서 일까. 움푹 파였다. 그 모습에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낀다.

#왓 프라 마하탓(Wat Phra Mahathat)

왓 프라 마하탓 사원은 참담했던 역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사원 곳곳에는 몸통만 있는 불상, 머리만 남은 불상이 나뒹굴고, 잘려나간 불상 머리가 보리수나무 뿌리에 휘감긴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왓 프라 마하탓 사원의 불상들은 전쟁의 상흔으로 불두는 대부분 훼손됐다. 침탈과 약탈, 전쟁에 이은 문화말살의 현장이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목잘린 불상들은 일본에 의해, 몽골의 목 잘린 불상들은 러시아에 의한 전쟁으로 훼손됐듯 이곳 태국의 불상들은 미얀마에 의해 금불상과 부처님 속에 금, 루비, 크리스탈을 훔치기 위한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 약탈이 만들어 낸 전쟁 후 전리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관광객들이 인증샷을 찍는 곳이 바로 나무불상이다. 나무뿌리에 휘감긴 그 모습이 신비스럽다는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는 관광객들의 무지한 모습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내 우리도 그 관광객들을 닮아, 좋은 각도에서 이 불두를 찍어내는 그 모습에 중생의 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위한 프라 몽콧 보핏(Viharn Phra Mongkhon Bophit)

이곳의 본존불은 태국 최대의 청동불로 손꼽힌다. 높이 18m의 이 좌불상은 법당 안을 가득 메웠다. 지금은 금박이 입혀져 그 황금불의 위세가 당당하다. 법당 주변에는 옛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이 불상의 변천사가 흑백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상은 오래 전 만들어졌지만 법당은 지은 지 50년이 채 안 됐다. 왕궁 동쪽에 불상만 있던 것을 송탐 왕에 의해 현재에 자리에다 옮겨 법당을 지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미얀마 침입에 의해 법당은 1767년 모두 파괴됐고, 1956년 미얀마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복원했다는 그 자체도 이채롭다. 200년 만에 잘못을 뉘우치는 걸까. 재건 당시 청동불 안에서 수백채의 작은 불상들이 발견되어 더욱 유명세를 떨쳤다고 하는데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환희심이 충만하다.

우리는 기억 속 이미지에 갇혀 산다. 누가 흘리듯 한번 내뱉은 관광태국의 이미지는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이용한 음탐한 돈벌이를 하는 나라’였다. 놀거리, 볼거리, 먹을거리가 모두 갖춘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 태국이지만 그 안에 속살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생활 방식 속에 행복을 만들어 간다. 자신들만의 나름대로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만난 국민들은 여유로움에 흠뻑 빠진 이 나라의 행복은 부처님의 미소에서 비롯됐다. 태국불교를 보지 않고 불교를 말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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