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법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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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법문 (8)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8.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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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법문- ‘나는 무엇인가?’ ⇔ 오온 ①

「말리까 경」(S3:8)에서 꼬살라국國의 빠세나디 왕과 그의 아내 말리까 왕비는 왕궁의 누각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말리까여,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자가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제게는 제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자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런데 폐하께서는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자가 있습니까?”

“말리까여, 나에게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자는 없습니다.”

대왕이 세존께 다가가서 이 대화를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다.
“마음으로 사방을 찾아보건만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자 볼 수 없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이 사랑스러운  법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 남을 해치지 마세.”

이처럼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인류가 있어 온 이래로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많은 질문은 바로‘나는 무엇인가’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당연히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셨고, 중요한 질문이기에 아주 많이, 그것도 아주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초기경의 곳곳에서 간단명료하게‘나’는 오온paňca-kkhandha 五蘊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蘊가 실타래처럼 엉킨 조합에 불과하고 조건 지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설하셨다. 

<첫째>, 물질rūpa은「삼켜버림 경」(S22:79)에서는‘변형된다고 해서 물질이라 한다.’라고 정의된다. 여기서 변형變形은 변화變化와 다르다. 변형은 형태나 모양이 있는 것이 그 형태나 모양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물질만이 특징이다. 느낌, 인식, 심리현상, 알음알이와 같은 정신의 무더기들은 변화는 할 수 있지만 변형은 없다. 형태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변형은 물질에만 있는 성질이다.

<둘째>, 느낌vedanā은 감정적이고 정서적이고 예술적인 심리현상들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탐욕이나 성냄은 느낌을 토대로 한 심리현상들이지만 느낌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경전에 의하면 느낌에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가 있다.

<셋째>, 인식saňňā은 이지적, 사상적, 철학적 심리현상들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어리석음이나 통찰지나 사견과 같은 심리현상들은 인식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인식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온의 네 번째인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蘊에 속한다. 인식은 단박에 전환이 가능하고 유신견sakkāya-ditthi 有身見과 관계있다. 또한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인식의 전도에 빠져서 어리석음으로 발전될 수 있다.

<넷째>, 행sańkhārā 行은 심리현상들을 뜻한다. 행온行蘊은 52가지 마음부수들 중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나머지 50가지 마음부수들 모두를 다 포함한다는 것이 주석서와 복주서들을 비롯한 아비담마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다섯째>, 알음알이viňňāna 識은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의 도움으로 대상을 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러 초기불전에서‘식별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왜 ‘나’라는 존재를 이처럼 다섯 가지로 해체해서 말씀하신 이유는‘나’혹은 자아라는 고정 불변하는 어떤 실체sārar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와지라 비구니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게송으로 읊고 있다.

“마치 부품들이 조립한 것이 있을 때 /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 무더기들五蘊이 있을 때 / 중생이라는 인습적 표현이 있을 뿐이로다.”「와지라 경」(S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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