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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백년지대계 불사…불교대학 교육과정 체계화제주불교의 주춧돌, 당신을 모십니다 <6> - 현수언 前 서귀포불교대학장 -

현수언 전 서귀포불교대학장은 지난 2003년 서귀포불교대학장을 맡아 9년 8개월 동안 서귀포불교대학을‘제주 불교대학의 메카’로 성장시키는데 최고의 공로자다. 현 전 학장의 불자의 삶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불교에 대한 목마름…불교대학 1기 입학
“서귀포불교대학의 구원투수가 되어달라”

 

약천사서 머물며 매일 법구경과 경전 사경
불교대학 건물 법원 경매…전화위복 계기

 

 

▲ 현수언 前 학장은 … 1935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출생했다. 1955년 초등교사 교편생활 시작했으며 1976년 서귀포서화 동호인회 가입을 시작으로 서예생활을 시작했고, 소암 현중화 선생으로부터 17년 간 서예를 배웠다. 2000년 서귀포불교대학 1기로 입학해 2003년 서귀포불교대학 학장에 취임했다. 학장을 역임하면서 경전 암송대회, 수계법회시 1080배 실시, 매년 설악산 오세암·봉정암 성지순례, 매월 격월로 신행·산행법회 봉행, 성도재일을 앞두고 철야정진 수련회 개최, 사경노트 제작 등 2013년 퇴임까지 9년 8개월 동안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 명문불교대학으로 부상에 노력했다. 2009년 붇다대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부터 제주를 찾는 신혼부부 1700여명에게 자신이 쓴 휘호를 선물했다. 매해 입춘절마다 ‘입춘대길’ 휘호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며 서예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또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직접 쓴 서재를 휘호를 써 주는 등 청소년 포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1990년 후반 2000년 초에 접어들면서 제주지역에‘불교대학’설립 붐이 조성됐다. 제주지역 불자들도 정법불교를 통해‘기복신앙’에서 벗어나‘참 불자’의 언덕을 건널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특히 인구 16만의 소도시 서귀포시 유일의‘서귀포불교대학’은 지난 2000년 4월 문을 연 후 지금까지 2천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서귀포시장을 비롯해 기관단체장, 지역 유지 등도 서귀포불교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지역 내 교류가 형성되지 않을 정도로 서귀포불교대학의 위상과 명성은 높다. 타 종교인들도 불교를 알고자 문을 두드릴 정도다. 서귀포 불교대학이‘제주 불교대학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종단을 초월해 지역 스님들이 교수협의회를 구성하고 대학 강의와 신행활동에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주효했다. 또한 그 중심에는 2003년 7월 학장을 맡아 2013년 3월까지 9년 8개월 동안 서귀포불교대학과 함께한 현수언(82) 前 학장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편을 잡고, 취미 생활로 서예를 즐겼던 현 前 학장은 처음부터 열렬한 불심을 가진 불자는 아니었다. 초하루에 아내를 절에 데려다 주는 것 외에는 사찰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귀포시 법환초 교장 퇴임을 앞둘 무렵이었다. 

현 前 학장은“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법환초 어머니회장이 바로 불자 탤런트 고두심 씨의 친동생 고두실 씨였다”며“친하게 지내는 지인 역시 독실한 불자였다. 자연스럽게 법우들과 함께 한마음선원 제주지원과 혜국 스님이 창건한 남국선원 등을 참배하면서 불심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고, 정년퇴임 후에는 사찰을 순례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불자가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사찰에 가면 불교에 대한 기본교리를 가르치는 과정이 전무했던 터라 현 前 학장은 불교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했다. 1999년 정년퇴임 후 2000년 3월 불교대학이 개원하자마자 바로 입학신청을 했다. 1년 동안 불교대학에 입학, 불교에 대해 알아가며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르게 회향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또 서귀포시의 저명한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배웠던 그는 불교대학 졸업 후 약천사에 머물면서 매일같이 법구경과 경전 등을 사경하며 불심을 돈독히 쌓아나갔다. 한지에 먹물 들 듯 그렇게 현 전 학장에게는 시나브로 불자의 색이 입혀졌다.

“당시 약천사 주지 성공 스님은 대보름이 되면 경내에서 달빛축제를 열었어요. 졸필일지 모르지만 저 나름대로 정성껏 부처님의 말씀을 부채에 써서 그날 오시는 분들에게 선물로 20~30개를 보시했더니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습니다. 불자로서의 첫 작품 활동이었던거죠.”

붓으로 금강경 전편을 사경하는 등 불심이 타오를 무렵, 현 前 학장은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게 됐다. 당시 서귀포불교대학 교수협의회장이었던 시몽 스님(前 법화사 주지)으로부터 서귀포불교대학장을 맡아달라는 전화였다. 그가 사찰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시몽 스님이 현 씨를 서귀포불교대학을 이끌 적임자라고 눈여겨 본 것이다. 당시 평균 40여명을 웃돌았던 입학생들이 8~9기에 접어들면서 10여명으로 급감했고, 서귀포불교대학에게는 급한 불을 꺼 줄 수 있는 구원투수가 필요했던 셈이다.

“처음에는 불교대학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망설였지만 끝내 수락을 했죠. 입학생 모집이 당장 발에 떨어진 불이었기 때문에 40여 곳의 사찰을 순회하며 스님들에게 신도들의 불교대학 입학 권유를 일일이 당부했습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0기는 35명, 11기는 49명이 입학하는 등 입학생 숫자는 점차 늘어갔다. 그래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불교대학에 강의를 받으러 오는 학생들마다 대학 입구에서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입학생들의 불교에 대한 호감도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점차 학생들이 증가함에 따라 약 30평에 지나지 않던 기존의 강의실이 비좁아졌다. 서귀포시 서홍새마을금고 2층 건물을 임대해서 쓰다 2005년 6월 동홍동으로 이전, 약 3배에 달하는 80평 규모의 건물로 이사를 가게 된다. 9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과 참선실, 휴게실, 행정실 등을 갖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개교 5년 만에 학교 이전을 통한 새로운 출발의 전기를 마련한 야심찬 도전이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학장을 비롯해 모든 임원들이 무보시로 봉사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며 입학생들의 입학금을 조금씩 모아 목돈을 마련해 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현 건물의 매입을 맡았던 임원이 등기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건물이 담보로 잡혀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법원에 경매 공고가 떴다. 

“12기가 졸업할 시기였는데 학생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임원들과 해결방안을 두고 머리를 맞댔지만 또렷한 방법이 나오질 않았어요. 경매에 참여를 했고 혼자 법원에 가서 결과를 지켜봤지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조마조마합니다.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곳 중에 교회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가 낙찰받게 됐어요. 바로 불법을 널리 펴라는 부처님의 가피지요. 그 일로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욱 힘 쏟을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됐지요.” 

<다음호에 계속>

이병철 기자  taiwan08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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