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속에서 소소하게 올리는 행복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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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에서 소소하게 올리는 행복 공양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6.11.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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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 아나운서 초청 토크콘서트
 

작은 수고로움 때문에 생명을 죽게 
놔둔다는 것 불자도리 아니라 생각

 

 

올해로 70세를 넘기고 보니 여기저기서 주례를 서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습니다. 맺은 인연이 많고, 간절한 부탁이 많아서 한 달에 두세 곳은 주례를 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례사에서 빠뜨리지 않고 하는게 있습니다. 여기에는 결혼을 하신분도, 하실 분도 계신 것 같은데요. 특히 주례사를 놓고 객석에 하객들은 “주례사가 기네, 짧네”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저는 길게 합니다. 그래서 훼방 놓으시는 분들에게는 “점심 드시고 오세요”(웃음)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결혼이란 신혼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아들, 딸 잘 낳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판에 박힌 주례사는 싫습니다. 

저는 1975년 3월 19일 결혼을 했습니다. 이날 은사님의 주례사가 제 인생의 참고서와 같습니다. 

은사님의 주례사가 잊히지 않는게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평균 수명이 60~70세였어요. 은사님은 “20대에는 뜨겁게 사랑하라. 그리고 3~40대에 무릎이 깨지도록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라. 그리고 4~50대에 노후를 준비해서 노후에는 학처럼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년에는 깨끗하고 우아하게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례사로“사랑만으로 결혼했기 바란다”고 말합니다. 집안의 배경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결혼했기를 바랍니다. 살면서 서로의 모자란 부분은 눈높이를 맞춰 주라고 합니다. 그 눈높이는 약한 쪽이나 낮은 쪽에서는 맞출 수 없습니다. 힘이 세고, 높은 쪽이 맞춰져야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덜 배운 사람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세요’라는 말로 끝맺음을 합니다. 평균적으로 잘 사는 중산층이 튼튼한 나라가 잘 사는, 좋은 환경입니다. 

우리는 내가 입는 옷, 그 현재의 모습만 봅니다. 이 옷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잘 몰라요. 우유 한 봉지를 사서 먹더라도 한 번 생각하라고 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부모님이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과 같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돼 지독하게는 살지 말아라. 돈을 많이 벌돼 쓸 줄도 알아라. 가족을 생각하는만큼 주변도 돌아봐라. 용기는 필요하지만 만용을 부리지는 말아라. 죽을 때 기품을 잃지 말아라 등등입니다.

하루는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습니다. 내 마지막 삶의 미래를 내다보니‘이제 10년이란 수명도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그런대로 살다가 두려움 없이 간다’라고 붙였습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무소유’의 법정 스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는 법정 스님의 유발상좌로‘향적’이란 법명도 받았습니다. 

스님이 열반에 들 무렵, 당시 바쁜 선거판에서도 잠시 뵙고 그랬습니다.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스님의 말씀을 들려주려‘맑고 향기롭게’책을 갖고 왔습니다. 여기에 스님이‘공양’에 대해 써 놓은 글이 있습니다. 

읊어 보겠습니다.“공양이란 받들어 올리는 일이다. 어떻게 하는 공양이 으뜸인가. 공양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것, 소외된 이웃을 거두어 주는 것, 이웃의 고통을 대신 받는 것,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공양이 아닌 몸으로 덕스러운 행위가 공양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짜 공양은 그 뜻을 받들어 몸소 행동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몸소 실천하는 것이 부처님을 출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뜻에 따른다는 것은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고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 말합니다.

공양은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아픈 이에게 의사가 되어주고, 어두운 밤에는 등불이 되어 주고, 가난한 사람을 받드는 것입니다.

이 지극한 보살은 누구이고 그런 행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보현보살만이 아닌 무한한 잠재력을 지금 우뚝 서 있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자각한 내 자신입니다.

저는 시골에 살면서 아침에는 광화문 인근의 채널A에서 아침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침에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에 한 아주머니가 광고 전단지를 나눠줍니다. 주변을 보면 그 전단지를 잘 받아주는 시민들이 안계세요.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아마도 하루에 천장을 돌려야 돈 만원 받을 겁니다. 받아주는 것이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마음을 내서 반드시 두 손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가면서도 보는 척 하려합니다. 그 사람이 단 몇 초만이라도 기분이 좋게 말입니다. 

또 저는 20여년 전부터 시골에 살며, 농부의 흉내를 내는 사람입니다. 경운기까지 운전하는 꽤 괜찮은 농민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아내가 힘들다고 해서 농사 규모를 많이 줄였어요. 올해 배추를 80포기를 심었는데 많이 심을 때는 400포기까지 심었어요. 

최근에 서울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진 날이 있었어요. 제가 사는 시골은 더 온도가 떨어집니다. 그러면 무가 얼어요. 방송을 부랴부랴 마치고 집으로 향해서 밤 8시 30분 경에 중무장을 하고 무와 배추 등을 비닐로 덮어주었어요. 혼자 하는 노동이기에 땀이 무척 납니다.

그러면서 무를 보며“따뜻하게 잘 자라”라고 귓속말을 해 줍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말을 했을 때 정말 무가 따뜻한 품안에서 자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듭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이 같은 일은 김장 시기가 되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여겨집니다.

지인들은 그렇게 힘들게 농사지어서 병원비가 더 나오겠다고 핀잔을 줍니다. 물론 경제논리로 보면 그렇지요. 몸은 힘이 들지만 무와 배추에게 쏟은 그 애정 때문에 제 마음이 너무 행복하거든요. 춥다고 방에 웅크리고 나오지 않는다면 애들(무와 배추)은 아마도 얼어 죽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죄를 짓는 겁니다. 

나는 불자니까. 생명에 대한 사랑은 법정 스님에게 그렇게 배웠고, 부처님 가르침, 부모님에게도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그 생명에 대한 조그만 수고로움 때문에 죽게 놔둔다는 것은 불자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비닐을 덮어주고 따뜻한 집안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이 바로 극락이지요. 저는 요즘 그런게 삶의 행복입니다.

/정리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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