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마음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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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마음 실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8.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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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행복을 위한 소도리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라고 어릴 적 원불교를 다닐 때  불가를 부른 기억이 있다. 유년시절 입문을 한 듯 불교는 친숙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불법을 홍포하겠다고 포교사 공부를 하면서 더욱 더 부처님의 참다운 진리,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인 것도 뒤늦게 깨닫는다. “불교를 제대로 아느냐?”라고 누가 질문을 한다면 서슴없이 답변 할 줄 알아야 불법을 널리 알리고 포교도 할 수 있다

지난 해 친분 있는 법우인 지인이 갑자기 두 가지 질문을 했다. 부처님의 법어나 큰스님의 법문을 종종 듣거나 읽고 나서 다른 공유 매체에 글을 올린 것이 의문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질문은 두 가지를 하겠다고 즉시 답을 요청하듯 지면에 올렸다. 당황스럽기도 하다. 나름 자세를 가다듬고 답변을 해야 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질문 하나는 “고통이 원인이 집착이라면 집착은 태어나면서 생겨난 것입니까? 집착과 연기 윤회는 어떤 것입니까?”, 두 번 째 질문 “죽으면 이 모든 것이 어찌되는 것입니까? 그야말로 끊어지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질문의 요지는 내 근기에 맞게 대답해 주기로 했다. 

고통이 원인을 집착이라고 하기에 앞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육근과 육경 그리고 육식까지 즉 총 18계(十八界)로 분류되는 법체계로서 식별작용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 18가지 범주이다. 

불교에서는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에 인식작용을 18가지로 나눈다.

이것은 하나의 예를 들면 눈으로 색을 보며 나뭇잎의 색이 예쁘다는 사람, 안 예쁘다는 사람, 예쁘기도 하고 안 예쁘기도 하다고 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안식작용이 있어서 즉 눈과 형상 그리고 식이 서로 다르게 집착(탐착)하는 것을 우리는 인식을 해야 한다. 

연기와 윤회는 어떤 것입니까 먼저 연기법은 붓다가 6년 고행 끝에 깨달은 가르침으로 실상을 바로 보고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 했다.

모든 우주 존재 만물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네 가지로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는 이것이 있음에 저것이 있고,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은 이것이 생김에 저것이 생긴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는 이것이 없음에 저것이 없고,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은 이것이 멸함에 저것이 멸한다. 즉 인이란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고, 연은 간접적인 보조의 원인이 된다. 서로 상생의 공존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생명이 모순과 투쟁의 삶에서 벗어나 서로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이다.

윤회는 어떤 것이고, 죽으면 이 모든 것이 어찌되는 것입니까? 그야말로 끊어지는 것입니까? 쉬운 질문은 아니다. 윤회는 톱니바퀴가 돌 듯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진리의 법칙 속에서 우리는 잠시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났다가 지수화풍으로 돌아갈 때 육체의 옷을 모두 벗어놓고 정신세계 마음 하나 가지고 떠난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십이인연법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속하여 받는 과보를 말하는 것으로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서 삼세를 통하여 무한히 생사윤회를 하는 모습 열두 가지로 나누어서 관찰한다. 이는 곧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등 십이인연법이다. 

십이 인연은 실체가 아니라 허망한 물체로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의 십이인연을 진실로 알고 집착하기 때문에 무명이 생기고 무명으로부터 무지한 행동과 분별을 일으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취하고 취함으로부터 괴로운 몸을 받고 있으면서 중생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불법을 널리 알리겠다고 몇 해 전에 팔관재계를 받은 터라 실천하고 깨닫는 포교사가 되어 정법에 맞게 늘 노력하는 불제자가 되고자 틈틈이 불법을 다시금 독송한다.

 

/여래심 정인숙 (포교사·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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