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저 언덕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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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저 언덕에 이르는 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9.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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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스님 법문>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가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이쪽 언덕이고, 그 같은 고통이 소멸된 이상세계를 저 언덕이라 합니다. 불교는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가르침이니 이를 일러 도피안(倒彼岸)이라 합니다. 유명한 《반야심경》은 본래 이름이 《반야바라밀경》인데 여기에서 ‘바라밀다’란 말이 바로 도피안 즉 저 언덕에 도착했다는 뜻입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다 번역하면 ‘완전한 지혜’로 저 언덕을 건너가는 핵심적인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금강경》도 본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번역하면 ‘금강과 같은 완전한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려는 것은 잘못 생각하면 현실에 대한 도피나 염세주의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괴로운 것이고 저 언덕은 행복한 세상이니 현실을 포기하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저 죽은 다음에 가는 언덕이란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현재의 세계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입니다. 즉 현실세계를 이상세계로 만드는 것이 불교의 목표입니다. 이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개조 또는 개혁의 다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불교가 목적하는 이상세계에 갈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현실을 개조해 이상세를 만들 수 있는가. 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육바라밀, 즉 ‘여섯 가지 저 언덕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제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스로 갖추고 있는 빛이 홀로 빛나니

그대를 위해 한 가닥 길을 열어 놓았도다

살펴본다면 그 누가 이를 모를 것인가

거꾸로 소를 타고 법당에 들어가는 것을.

 

첫째는 보시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보시(布施)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자선행위는 많은 경전에서 가장 큰 공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승불교에 이르면 무주상보시가 강조됩니다. 무주상보시란 선행을 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보시에는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재시는 금전이나 재물과 같은 경제적 시여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법시는 진리를 가르쳐줌으로써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무외시는 공포나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안심을 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보시행위는 주는 자와 받는 자, 주는 물건이 모두 깨끗해야합니다. 이를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불순한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주는 사람도 나쁘고 받은 사람도 나쁘고 오고간 물건도 뇌물이므로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시는 주고받는 행위가 순수해야 하며,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참다운 보시가 됩니다.

둘째는 지계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지계(持戒)란 선행의 실천을 위해 정해진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계율에는 섭율의계(攝律儀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의 세 종류가 있습니다. 섭율의계란 5계 10계 등과 같이 방비지악(防非止惡)을 위한 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를 지악계(止惡戒)라고도 합니다. 한편 이것보다도 적극적으로 선행의 실천을 강조하는 10선계가 있습니다. 살생 대신 방생을 하며 도둑질 대신 보시를 하는 등 열 가지 선업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섭선법계 또는 행선계라고 합니다. 나아가서는 모든 행위를 중생의 이로움을 위해 행하는 사섭법(四攝法) 즉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와 같은 행위를 섭중생계 또는 이타계라고 합니다.

셋째는 인욕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인욕이란 온갖 모욕과 어려움을 참는 것을 말합니다. 남이 나를 해롭게 해도 보복하지 않고 상대를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것이 인욕입니다. 그런가 하면 물질적인 내핍, 정신적인 욕망 제어와 같은 것이 곧 인욕입니다.

인욕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복인(伏忍)이니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화는 마음을 참는 것입니다. 둘째는 유순인(柔順忍)으로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유순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는 무생인(無生忍)으로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성낼 일도, 참을 일도 없게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적멸인(寂滅忍)으로 생사고해를 뛰어넘어 본래부터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인욕에 관한 유명한 얘기로는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보살이 있습니다. 상불경보살은 그 이름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누가 자기를 욕하거나 꾸짖어도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미래의 부처님입니다.’하고 예배했다고 합니다. 인욕은 이렇게 자기에 집착하지 않고 평화스러운 기분으로 상대에 애정을 가질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남과 융화하기 위해서는 인욕의 태도가 필수적입니다.

넷째는 정진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정진(精進)이란 순일하고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항상 부지런하여 물러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훌륭한 정진은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것입니다. 즉 위로는 자기완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재하기 위해 헌신하기를 멈추지 않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상하로 나누어 말하면 선후관계로 아는 분도 있는데 내외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즉 안으로 보리를 구하고 밖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진은 몸으로 착한 일을 하고 입으로 부드러운 말을 하며, 생각은 늘 진리의 세계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정진으로 무장된 사람은 어떠한 역경이 부딪혀도 물러서지 않으며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다섯째는 선정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선정이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명상이라든가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평정을 얻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침착하지 못하고 침착을 잃으면 판단을 그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선정을 닦기 위해서는 삿된 생각, 허영심, 분별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선정은 걸어다니거나, 멈춰있을 때나, 앉거나, 누워있거나, 또는 말하거나, 침묵할 때, 움직이거나, 고요히 있을 때에 상관없이 언제나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모두 고요한 마음바탕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여섯째 반야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반야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훤히 꿰뚫어보는 지혜를 말합니다. 진리에 대해 바른 생각을 하고 삿된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사량분별을 통해 얻는 통속적인 지혜가 아니라 선정에 의해 얻어지는 직관지이므로 지혜라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반야라고 합니다. 반야는 다시 말해 완전한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듣고 배우고 생각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나도록 합니다.

반야바라밀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바라밀을 실천하는 바탕입니다. 즉 지혜가 없으면 보시도 못하고 지계도 하지 않으면 인욕도 하지 않게 됩니다. 바른 생각과 지혜가 있어야 바라밀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지혜가 있어야 바라밀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바라밀 가운데 반야바라밀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편 화엄경에서는 이상의 육바라밀 외에 4바라밀을 더 보태어 10바라밀을 수행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방편바라밀 원바라밀 역바라밀 지바라밀이 그것입니다. 방편바라밀은 중생구제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며, 원바라밀은 보살행의 근본이 되는 중생구제의 서원을 세워야 하며, 역바라밀은 어떤 망상이나 번뇌에도 굴복하지 않는 굳센 힘을 갖출 것이며, 지바라밀은 사물의 시비의 정사를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r,러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이 같은 바라밀을 잘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조사들은 착어를 하면서 연꽃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간에 처하되 허공과 같으며

연꽃처럼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마음이 깨끗해 저 언덕을 건너는

위없는 스승에게 머리 숙이옵니다.

 

세상살이는 참으로 집착할 것도 많고 물들어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불자는 세상에 살되 허공에 머물 듯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더러움 속에 살되 연꽃처럼 더러움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하면서 살면 마침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죽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게 됩니다. 이 길을 가는 사람에게 누가 고개를 숙이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착하게 살고자 하나 악해져야 하는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연꽃처럼 더러움에 물들지 말고 육바라밀을 실천해 모두 저 언덕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한국불교 태고종 승정원 부원장, 제주교구 종무원장을 역임하셨고, 제주도에서 40여년을 교화활동을 펴신 동산당 남준대종사(1909~1993)께서는 사자후를 통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라는 여섯 가지 바라밀 수행을 잘 실천한다면 사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연꽃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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