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시론) 자등명·법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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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자등명·법등명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9.1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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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석(편집인)

『대반열반경』(D16)에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신을 섬dīpa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인도의 산스끄리트 어語로서는 빠알리 dīpa를 섬[洲] 또는 등불[燈明]로 표현한다. 남방의 상좌부 불교에서는 전자로, 북방 불교에서는 후자로 해석하자 중국에서는 ‘섬’을 등명으로 한역하였다고 전해진다.

세존께서 자신을 섬으로 삼고, 법을 섬으로 삼는 방법은 신身·수受·심心·법法(예, 의도와 갈망 등) 네 가지 마음챙김(sati)의 확립[四念處]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방법으로 세존께서 설하신 사념처의 확립은 자신을 네 가지로 해체해서 불변하는 실체, 즉 자아 없음[空]을 관찰하라는 뜻이다.

 

오늘날 제주 불자들이 “자신과 법을 섬으로 삼고 귀의처로 삼아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양약良藥으로 삼아 받아들이고[聞] 생각하고[思] 그대로 실천하는[修] 보살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의 족쇄에 묶여 자신을 섬으로 삼는 길道을 찾지 않는다. 자신의 감각기관에 지배당한 탓으로 윤회의 함정에 빠져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아주 강한 자아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너무 단단하고 짧은 밧줄에 묶여 꼼짝달싹 못한다.

절집에서도 정법正法이 살아 숨 쉬고 있지 않다. 비법非法이 난무하고 비록 외양은 번듯하나 불교의 미래를 짊어질 선지식善知識들은 마치 구름 속에 갇힌 달 모양새다.

제주는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여 명상과 힐링의 섬으로 부상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부처님의 직계 제자인 발타라 존자가 한라산 영실 존자암에서 전법하였다는 불연佛緣의 매우 깊은 곳이기도 하다.

마치 인도에서 사라진 상좌부 불교가 인도양의 눈물이라는 애칭을 가진 ‘스리랑카’의 섬에서 전승, 보존되었듯이 제주도를 섬으로 하고 의지처로 하여 진리의 가르침이 융성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유일한 길은 명상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다. 명상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체계의 확립, 명상 마을 만들기 및 운영자 육성 등이 그것이다.

명상은 잠자고 있는 일체의 잠재력을 활성화해서 우리를 새로운 경지로 들게 함으로써 자기 변혁을 이루어내게끔 해준다. 20세기 미얀마, 태국 등지에서 행해지던 위빠사나 명상이 미국에 전파되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 그 방법을 가공, 변형하여 ‘마음챙김 명상' mindfulness meditation으로 정착되고 있다. 1,000만 명을 넘는 미국인들은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학적 논증을 거쳐 마음챙김 또는 ’그대로 보기‘ 명상법을 예컨대 우울, 불안, 공포 등의 정신장애 치료와 몸의 통증 완화에 쓰고 있다.

이와 같이 불교가 현대 문화에 끼친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구글’과 ‘인텔’ 등 세계적인 기업은 오래전부터 직원들의 스트레스 완화와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마음챙김’, 즉 사념처 명상을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6월 KAIST 명상과학연구소(대표 미산 스님)가 개원한다. 이 연구소의 개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공감 형 창의적 인재 양성에 기여할 마중물이 될 것이다.

재가 불자에겐 명상이란 당치도 않다는 애기를 많이 듣는다. 각박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적응과 명상 수행을 융합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커다란 문제였던 것 같다. 부처님 당시 사회 지도층에 속했던 ‘디가자누’라는 사람에게 다음 생에서 안락과 행복을 누리려면 네 가지 조건, 즉 믿음, 계행, 자비,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깊이 새겨 실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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